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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김순규 목포MBC PD

▲ 김순규 목포MBC PD
온데 간데 없어져버린 봄을 지나 여름이 가까워졌습니다. 노란 민들레꽃이 피어있는 숲길 옆엔 빈 줄기를 타고 올라온 민들레 씨앗도 함께 있습니다. 민들레 홀씨라고도 하죠. 딸아이가 줄기를 꺾어 훅 불어서 날려봅니다. 산들바람에 잘도 날아갑니다. 신영복 선생의 서화에세이 ‘처음처럼’의 ‘대지의 민들레’라는 글이 생각납니다.

대지의 민들레
이상은 추락함으로써 싹을 틔우는 한 알의 씨앗입니다.
비록 추락이 이상의 예정된 운명이라고 하더라도
이상은 대지(大地)에 추락하여야 합니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민들레는 슬픔입니다.

MBC노동조합은 운명처럼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스스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함을 안은 채,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더라도 그것이 운명인줄 알았습니다. 처음엔 비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39일간 지속된 파업과정에서 비관은 낙관으로 바뀌었습니다. 선봉에 선 위원장에 대한 믿음에서 파업 잠정중단이라는 결정을 듣고 흘린 눈물에서 그리고 오랜 시간의 격론에서 또 다른 희망을 발견합니다. 최소한 슬픈 민들레는 아닙니다. 머리에서 심장까지 예정된 운명에 최선을 다했고, 서로에게 박수를 쳤기 때문입니다. 기쁩니다.

위원장의 말대로 우리는 다시 길에 섰습니다. 그 길은 지난 39일의 시간보다 더 험난한 길 일겁니다. 지역에 사는 지방 PD 조합원의 길은 더 첩첩산중입니다. 진주MBC 노동조합의 고립이 80년 5월 광주를 연상케 하기 때문입니다. 시쳇말로 남 일이 아닙니다. 이제 그 외로움과 고립을 연대로 풀어 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운명입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를지라도 동반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신영복 선생의 다음 글을 소개하며 마칠까 합니다.

절반(折半)과 동반(同伴)
피아노의 건반은 우리에게 반음(半音)의 의미를 가르칩니다.
반(半)은 절반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동반을 의미합니다.
모든 관계의 비결은 바로 이 반(半)과 반(伴)의 여백에 있습니다.
‘절반의 비탄’은 ‘절반의 환희’와 같은 것이며,
‘절반의 패배’는 ‘절반의 승리’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절반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만 있다면,
설령 그것이 환희와 비탄, 승리와 패배라는 대적(對敵)의 언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동반의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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