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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태인 경제평론가

2002년 프랑스 대선과 2010년 한국 지방선거

“프랑스 대선에서 자크 시라크 현 대통령이 압승을 거뒀다. 투표율 81%에 82.06%를 득표했으니, 전체 유권자의 60%가 넘는 사람들이 시라크를 지지한 것이다. 극우파인 쟝 마리 르펜을 결선투표에 올려 보냄으로써 완전히 구겨졌던 프랑스 국민의 자존심도 어느 정도 회복됐을 것이다.

굳이 사회당이 시라크를 지지하지 않았어도 르펜이 당선될 가능성은 0%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당 등 좌파, 그리고 유수의 언론들은 명시적으로 시라크 지지를 선언했다. 프랑스뿐만 아니다. 유럽 의회 의원들은, 'NON'(안돼)라는 한마디가 적힌 종이를 일제히 내보임으로써 르펜의 연설을 막았다. 그만큼 극우는 프랑스, 그리고 유럽 사회에서 발을 붙여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지난 2002년 5월에 <시민의신문>에 쓴 글이다. 8년의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무당적이었던 내가 진보정당의 당원이 되었지만 극우를 막기 위해서는 좌파도 우파를 지지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 글의 논지를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명박 정권은 유럽의 기준으로 분명 극우다.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놓더라도 나라의 젖줄을 파헤치고 있는 4대강 사업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한국은 프랑스(또 다른 유럽국가)와 확연히 다르다. 우리가 전면 비례대표제에 따라 투표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정부를 구성한다면, 또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제가 있다면 한국의 진보정당들도 흔쾌하게 프랑스 사회당처럼, 프랑스의 시민들처럼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도지사든,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다수대표제)를 가지고 있다. 진보를 향해 펄펄 뛰는 정열은 곧바로 싸늘한 시체(사표)가 되기 일쑤다. 유럽에서는 ‘정치연합’(political coalition)이 소수 좌파 정당의 활로지만 한국에서는 곧 존재를 부정하는 길이 된다.

▲ 경향신문 5월18일자 4면
정치연합과 진보정당

이번 선거가 2002년과 다른 것은 이명박 정부에 맞서 시민들이 “반MB 단일화”, 한국 최초로 본격적인 정치연합 전술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수대표제 때문에 선거 전의 일정한 합의에 따라 내가 진정 원하는 후보를 아예 투표용지에서 지워버리는 선택도 해야 하니 궁여지책임에 틀림없다. 입법 게임(legislation game)에서 그렇듯 거대 정당(민주당)이 최소의 양보를 통해 제일 약한 당부터 하나씩 흡수하는 양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정치연합의 기본 논리도 모르는 일부 학자들이 나서서 한미 FTA나 비정규직 문제는 정책협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식으로 초장부터 게임 룰을 흐트러뜨렸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박빙의 승부라면 핵폭탄의 위력을 지닌 심상정, 노회찬 두 후보를 장착한 진보신당이 가장 형편없는 전략을 택한 결과 당 전체를 왕따 신세로 만든 과정을 따질 여유는 없다.

▲ 정태인 경제평론가
진보정당이 제대로 살려면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 후보를 흔쾌히 지지할 수 없는 이유, 즉 한미 FTA나 의료민영화, 노동법, 그리고 선거제도 개편을 내세워 공개적인 ‘단일화 토론’을 해야 한다. 최소한 유권자가 왜 진보신당이 ‘몽니를 부리는지’는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다행히 고 노무현 대통령도 유고(“진보의 미래”)를 통해 한미 FTA와 자본시장 통합법, 노동시장 유연화 등 ‘양극화 기조’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한껏 오른쪽으로 기울었던 구여권 정치인들에게 활로를 열어 준 셈이다. 또 그 무엇보다도 극우는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시라크와 르펜은 결코 똑같지 않다. 이번 정치연합이 성과를 거둬야 진보정당이 자리 잡을 길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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