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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의 언니가 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5월 18일 새벽, 하늘에서 눈물처럼 비 내린다. 대구에서 태어나 박정희의 공적을 치하하고 김대중을 빨갱이라고 수천 수만 번씩 듣고 김영삼을 그래도 화끈하다, 직계 친아들에게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허락했으니 그래도 상대적으로 참 깨끗한 사람이라는 희한한 칭찬을 들으며 살아 온 인생의 첫 스무 해 동안 광주 시민들은 자연히 오랫동안 ‘폭도’였다.

처음으로 그게 아니구나, 하고 알아챈 것은 머리보다 혓바닥이었다. 요리조리 굴러가는 머리보다 짤막한 세 치 혀가 훨씬 더 정직했다. 오랫동안 가마솥 안에서 끓인 순대국과 젓갈을 가득 넣은 전라도 김치를 맛보았을 때 머리보다 혀가 먼저 탄식했다. 네가 스무 해 동안 먹어 온 김치는 김치가 아니라 잔디를 뜯어다 대강 양념한 거였다고. 이후 <광주집>이나 <나주순대국> 같은 곳에서 막걸리와 각종 안주를 탐하면서 종종 생각했다. 맛있는 걸 먹으면서 자라 온 사람들은 용감하고 너그러울 수밖에 없다고.

▲ 한겨레 5월18일자 1면
너무 편협한 생각이라고 탓할 사람 있을 것이 틀림없지만 맛없기로 소문 난 대구 음식만 스무 해 먹던 혀라 그렇게까지 놀랐던 거였다. 굳이 각종 산해진미가 아니라도 괜찮다. 김치 한 그릇이라도 양념 사이에 좀 눕혀 두었던 배추조각이 아니라 온갖 오묘한 맛을 내는 말 그대로 ‘김치’를 먹으며 자랐던 사람들은 인생에 얼마나 많은 것을 기대할까. 자신들이 아직 맛보지 않은 ‘맛’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는 고향을 사랑하지만 대구 사람들의 정치의식을 문제 삼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이 되어 이렇게 대꾸한다. 시끄러워, 너라도 그런 거 먹으면서 몇 십 년 지내 봐. 인생에 뭐 대단한 기대가 생길 것 같애? 분지라 신선한 식재료 조달도 어렵고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날씨 때문에 맛이 얼른 가 버리거나 얼른 들지 않는 음식을 먹는 우리는 대체로 음식을 빨리 먹어 ‘치워’ 버렸다. 늘 하는 말이 ‘먹고 치우자’였다.

몇 년 전 광주 출장을 갔을 때, 연탄갈비집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두 아이들과 고기를 구워 먹고 있던 그 부모는 먹어 ‘치울’ 생각을 않고 끝없이 먹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순대국을 먹어 봤을 때 이렇더라, 내가 처음 부대찌개를 먹어 봤을 때 저렇더라, 우리집에서 만들었던 최고의 송편이 이랬다, 그러고 보니까 이번 주에 비가 오면 만두 빚어 먹고 싶다 그때 먹은 그 맛을 낼 수 있을까, 하고 쉬지도 않고 오랜 시간 어린 아이들도 풋고추에 된장을 잘도 찍어 먹으며 그렇게 먹는 이야기를 하던 가족들은 고기를 다 구워 먹고 나자 살뜰하고도 노련하게 누른밥 한 공기와 냉면, 동치미국물에 만 국수를 청해서 바지런히 마지막 젓가락까지 꼴깍 넘기고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 김현진 에세이스트
신기하게 그 가족을 바라보던 나는 나중에 80년 광주의 도청을 생각하면 꼭 먹는 생각이 났다. 아무도 장사를 치러 주지 않을 것을 알고 삼십 년 전 오늘 새벽 깨끗이 씻고 속옷까지 새 것으로 갈아입은 채 꾸벅꾸벅 졸며 죽을 것을 알면서도 도청에 남았던 그 사람들이 투사로서 생각했던 것은 물론 역사의 장엄한 부름과 민주주의의 승리였겠지만 ‘사람’으로서 생각한 것은 어쩔 수 없이 따뜻한 밥 한 공기 아니었을까. 살아서 내일도 맛있는 밥을 먹어야지, 열심히 싸워서 후세에게는 뜨거운 자유를 먹여야지, 민주주의의 참된 ‘맛’을 보아야지, 그것이야말로 영웅들의 ‘밥심’이 아니었나 생각하면 번번이 눈물이 난다. 우리는 그 이후로도 삼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끼니를 그들에게 빚졌는가. 주룩주룩 비도 오니 고인들의 영전에 뜨끈한 순대국과 막걸리 한 사발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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