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파업 국면이 39일 만에 막을 내렸다.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사수를 위해 지난달 5일 파업에 돌입했던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이근행, 이하 MBC노조)는 지난 14일 파업을 잠정 중단하고 현장 투쟁으로 전환했다.
이번 파업은 ‘절반의 실패와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결론만 놓고 보면 김재철 사장과 황희만 부사장의 퇴진,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폭로로 드러난 정권의 MBC 인사 개입 진상 규명 등 표면적인 성과를 얻는데 실패했다. 정권 차원에서 ‘MBC 무력화’를 위해 파업 장기화를 방치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예정된 결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파업 중단을 두고 노조 내부에서 벌어진 격론은 오히려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사수에 대한 강한 의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흘간의 ‘총회투쟁’과 ‘새로운 세대’의 등장 =MBC 역사상 두 번째로 길었던 이번 파업 투쟁은 꽤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MBC 전체 구성원 80%가량에 해당하는 1028명이 기명으로 김재철 사장과 황희만 부사장 퇴진을 촉구하고, 국장급과 보직부장들이 사장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또 이근행 본부장이 무기한 단식 투쟁에 들어가자 60여명이 동조 단식에 나서는 등 자발적인 투쟁 열기도 주목을 받았다. 이는 시민들의 열띤 지지로도 이어져 MBC 사내·외 파업 지지 성금은 1억 5000만원을 돌파했다.
반발 여론은 2000년대 이후 입사자들을 중심으로 거셌다. 이들은 특히 파업 중단 의사결정과정의 ‘비민주성’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반발이 계속 되자 집행부는 이를 사실상의 불신임으로 받아들이고 지난 12일 총사퇴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노조 관계자는 “투쟁의 선봉이자 주력꾼이 될 젊은 조합원들을 찍어 누를 수만은 없지 않나”라며 “그들의 열기를 투쟁 동력으로 삼을 새 그릇을 만들어주는 게 옳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가 분열되어선 안 된다’는 총의에 따라 현 집행부는 조합원들로부터 ‘재신임’을 받고 지난 13일 사퇴 방침을 철회했다.
하지만 이로써 노조가 완전히 정상화 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지난 나흘간의 ‘총회투쟁’이 남긴 상처와 후유증을 수습해야 하며, 일부 반발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현 집행부가 향후 투쟁을 이어가는데 있어서 기존의 동력을 다시 끌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이번 사태를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이근행 본부장은 “우리 안의 일체감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투쟁 에너지를 확인하고 충전하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하며 “상처가 아닌 성장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다른 방송사 관계자도 “MBC의 저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MBC 입사 16년차 PD는 “그동안 관성적으로 싸움을 해나가는 측면이 있었다면, 이번 토론을 통해 우리가 왜 싸우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 지에 대해 분명히 자각을 하게 된 것 같다”면서 “어떤 식으로든 노조 역사의 신기원을 이룰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노조는 우선 △공정방송을 훼손하는 사장과 부사장의 부당한 지시 △사장과 부사장 동정 취재 △사장 부사장 주재 행사, 회식, 집단 상견례 등을 거부하고 매주 수요일엔 파업 티셔츠를 입는 등 김재철 사장과 황희만 부사장 불인정 투쟁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또한 공정방송 강화를 모토로 △공정보도 강화를 위한 특위 △〈PD수첩〉 사수 및 프로그램 공영성 강화 특위 △노조탄압 분쇄 특위 △지역MBC 사수를 위한 특위 △방문진 개혁 및 MBC 장악 진상조사 특위 등 5개의 특별위원회를 꾸려 활동에 들어갔다.
노조는 김재철 사장이 향후 〈PD수첩〉 폐지나 단체협약 파기, 노조 집행부 중징계 조치 등 공정방송을 훼손하고 노조 파괴에 나설 경우 일시 중단한 파업 투쟁을 전면 재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측이 당장 다음 주 인사위원회를 열어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징계를 강행할 예정이어서 빠른 시일 안에 파업이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