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스럽게 기대되는 영국의 정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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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총선이 끝났다. 보수당은 가장 많은 의석(306석)을 획득했지만 정부를 구성할 자격이 되는 과반수(326석)에는 못 미쳤다. 노동당은 91석을 잃은 258석을, TV토론의 가장 큰 수혜자라 할 수 있는 자유민주당은 57석에 그쳤다. 그 어느 당도 만족할 수 없는 결과를 남긴 채 영국의회는 절대 다수당이 없는 헝 의회(Hung Parliament)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선거는 끝났지만 누가 어떻게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지는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인들과 그들을 따라다니는 미디어는 더욱더 분주해졌다. 헝 의회가 될 경우 정부의 정책결정이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할 위험에 놓이고 의회는 불안정해진다. 헝 의회를 피하기 위해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은 자유 민주당과의 연합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자유 민주당의 닉 클레그는 이곳저곳에서 부르는 ‘귀빈’이 되었다.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이 연합할 경우 자유민주당은 거의 한 세기 만에 정권을 잡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진보 성향의 자유민주당이 보수당과 정책노선을 맞추어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 진보적인 노동당과의 연합은 훨씬 더 쉬울 수 있지만 둘의 의석을 합쳐도 과반수인 326석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또 다른 소수정당의 힘이 필요하다. 두 정당의 연합도 쉬운 일이 아닌데 둘 이상의 정당이 연합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보수당, 노동당, 자유민주당의 협상은 논의에 논의를 거쳐 지난 11일 윤곽이 드러났다. 자유민주당은 결국 보수당과의 연합을 결정했고 공식적인 연합이 발표되기 전에 고든 브라운 총리는 노동당 대표직을 사임하고 영국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다. 역사는 늘 한편의 드라마처럼 기억되고 왕과 정치인들은 그 중심에 서있다. 존 스미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1994년 노동당 대표가 된 젊은 토니 블레어는 10년 이상 노동당을 이끌면서 영국 정치의 중심에 섰다. 그는 새로운 노동당을 외치면서 노동당을 좌파가 아닌 진보의 중도파로 개혁했고 잉글랜드 중산층들의 지지도를 끌어올렸다.

세 번의 총선에서 노동당을 절대다수당으로 만들며 영국정부를 이끌었던 토니 블레어는 2007년 고든 브라운에게 총리자리를 내주고 영국 정치의 중심에서 물러난다. 바통을 넘겨받기에 그리 좋은 타이밍은 아니었다. 토니 블레어 시절 긍정적으로 평가 받은 개혁들은 몽땅 토니 블레어의 것으로 기억되고 그가 정리하지 않고 어질러놓은 일들은 고스란히 다음 주자에게 남겨졌다. 이라크 참전용사들의 사망소식은 계속되고 엄청난 부채와 경기침체가 고든 브라운을 짓눌렀다. 특유의 고집스럽고 퉁명스런 이미지까지 맞물려 미디어와 여론의 호감을 사는데 실패한 고든 브라운은 이번 총선의 실패를 책임지며 다우닝 10번지를 떠났다.

▲ 영국=배선경 통신원/ LSE(런던정경대) 문화사회학 석사

이제 다우닝가의 새 주인은 데이비드 캐머론이다. 블레어 전 총리처럼 절대다수당 대표로서 당당히 입성하지는 못했지만 블레어처럼 젊고 유연하며 당당하다. 이튼 보이(영국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스쿨 출신)라는 닉네임에서 볼 수 있듯이 데이비드 캐머론을 향한 시선에는 사회적 기대와 조롱, 그리고 질투가 섞여있다. 캐머론 총리와 그의 연합정부가 이 모든 기대와 의심의 시선들에 정직하게 맞서며 오랫동안 곱씹을 수 있는 멋진 정치를 만들어 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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