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이해하는 열쇠, 자오번산
상태바
중국을 이해하는 열쇠, 자오번산
  • 북경=배은실 통신원
  • 승인 2010.05.26 14: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9년 중국 유명인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선정된 자오번산은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이다. 그는 기업경영, 연예활동, 매니지먼트, 드라마, 영화 등 각 영역에서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과시하고 있다.
얼마 전 다시 한 번 그의 명세를 확인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5월 11~12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2010 중국 드라마PD(베이징)포럼’에서 ‘자오번산과 정칭루이 교수’간에 벌어진 언쟁이 화두로 오르면서, 포럼에 참석한 100여 명에 달하는 PD들이 비난의 화살을 일제히 자오번산에게 돌린 것이다.

▲ 자오번산.

그 발단이 된 것은 자오번산이 연출한 <농촌마을의 사랑이야기> 세미나 회장에서 중국촨메이대학 정칭루이 교수가 그의 작품을 ‘위선적 현실주의’라고 비판한 사건이다. 이날 자오번산은 정교수의 말에 대노했고, 정교수에게  “당신이 만든 드라마가 내 드라마보다 시청률이 높으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겠다”고 반박했다.

혹자는 포럼에 참석한 PD 및 관계자들이 한 무리가 되어 자오번산을 공격한 것을 두고 질투심에서 비롯된 행위라고도 하고, 혹자는 ‘자오번산은 건드릴 수 없는 존재냐’고 반문하면서 속시원해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일거수일투족 혹은 말 한마디로 전 중국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6세에 맹인 삼촌을 따라 중국 전통희극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17세에 연예계에 정식 입문했다. 동북지역에서 명성을 쌓던 그는 30세에 CCTV 설날 특집쇼 <춘제완후이>(이하 <춘완>)에 진출하면서 본격적인 자오번산다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가 제작, 출연한 수많은 샤오핀(小品ㆍ일종의 만담)은 춘완 대상을 휩쓸었고, 이제 사람들은 그의 샤오핀을 보면서 새해 첫 날을 맞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그해 샤오핀에서 나온 말들은 한해 최고의 유행어가 되고, 시내버스나 지하철 TV에서는 그를 캐릭커쳐를 영상화한 만화 샤오핀이 수시로 방송된다.
그러나 연예인으로서의 그의 성공은 자기 자신의 성공에만 그치지 않고 자오번산 사단으로까지 이어졌다. 2009년 춘완 샤오핀 <뿌차치엔(돈은 충분하다)>으로 그가 브라운관에 등단시킨 샤오션양은 2009년 최고의 주가를 기록했고, 장이모 감독의 러브콜을 받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외에도 판웨이, 류능 등 제자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그후 자오번산은 드라마 제작에까지 손을 뻗쳐 <농촌마을의 사랑이야기>를 출품했다. 1부 인기에 힘입어 2007년에는 2부, 2009년에는 3부가 제작되었고, 금년 초에는 4부제작도 거론되었다. 또 그는 드라마뿐 아니라 오락프로그램과 영화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번산미디어그룹이 헤이룽장방송국, 랴오닝방송국과 공동제작한 오락 프로그램 <번산콰일러잉>, <밍싱좐치라이>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으며, 지난 4월에는 그가 투자, 출연하는 영화 <대소강호(大笑江湖)>가 크랭크인 되었다.

▲ 북경=배은실 통신원/ 게오나투렌

그러던 2009년 9월 30일, 상하이에 체류중이던 자오번산은 뇌출혈로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언론은 이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최소 1년의 요양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0월 13일 그는 퇴원을 강행했고, 그 후 약 1달 후 선양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이도, 병도, 그 어떤 것도 그를 저지할 수 없단은 듯 그는 오늘도 ‘비행기 시가2억위안(340억원), 연간 유지비 500만위안(8억5천만원)’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자가용 비행기 ‘번산호’를 타고 중국하늘을 가르고 있다. 중국에서 자오번산은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이며, 우리가 중국 연예산업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열쇠가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