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방송인들은 알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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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방송인들은 알고 있는 것
[글로벌] 영국= 장정훈 통신원
  • 영국=장정훈 통신원
  • 승인 2010.06.0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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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났다. 결과는 노동당의 패배였다. “보수당의 승리”라고 하지 않는 건 보수당이 투표에 의해 완승을 하지 못하고 자유민주당과 연합을 통해 겨우 정권을 인수 받았기 때문이다. 보수당의 승리라고 하기엔 석연치 않은 상황. 지금 영국은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의 연정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투표 전날 몇 개의 신문들의 제목을 되짚어 보자. <“카메룬만이 영국을 구할 수 있다”-데일리 익스프레스가 보수당을 지지하는 이유>(데일리 익스프레스), <“우리의 유일한 희망”-오늘 <더 썬>은 카메룬을 지지해야 할 때>(더 썬)

언론으로서의 중립은 오간 데 없다. 되레 자사가 지지하는 정당이 무조건 승리하고 봐야 한다는 초조감마저 묻어날 지경이다. 그렇다면 방송은 어떨까.

▲ 영국 총선 직전 데이비드 카메룬 보수당 당수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나선 <더썬>
만약 방송이 이들 신문처럼 형평성을 포기하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려면 반대 정당 후보의 출연을 막고, 지지 정당 후보의 출연 횟수를 높여야 한다. 또 반대 정당의 공약을 비판하고, 지지 정당의 공약은 칭찬해야 한다. 하지만 BBC, ITV, SKY 보도의 기본은 토론이다.

보도의 기본이 토론이다 보니 한쪽 후보나 세력을 출연시켜 일방의 목소리를 듣는 경우는 극히 드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뉴스에서도, 심층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토론의 90% 이상이 사전 각본 없는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난상토론’이 일상처럼 이어진다. 방송이 ‘이슈’와 ‘판’을 제공하고 정당들은 그 ‘판’에서 ‘이슈’를 갖고 결투를 벌이는 셈이다.

또 영국의 방송들은 입체적인 취재 방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이른바 ‘3D’ 방식이다. 각 정당들이 어디서 어떤 유세를 펼치고 있는지 중계차를 동원해 여러 각도에서 보여준다. 한 정당에 카메라를 고정시키지 않는다. 어느 방송사에서도 논설은 없다. 때문에 신문처럼 특정 세력을 드러내놓고 지지할 수도 없다.

신문과 방송이 이처럼 다른 데는 나름의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신문은 특정 성향을 대변하고 그쪽 성향의 독자들을 상대로 구독료를 받는다. 반면 시청자는 성향에 따라 채널을 선택하고 그 채널에만 돈을 지불 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수신료는 영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내야 한다. 채널 선택권은 그 이후의 일이다.

결국 신문이 소위 ‘코드’가 맞는 독자에게 충실할 수 있는 반면, 방송은 ‘코드’의 폭을 넓혀서 최대한 많은 시청자와 다양한 입맛에 충실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는 방송의 비판적 기능과는 다른 문제다. 알다시피 영국 언론은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는 살벌한 비판 정신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 영국=장정훈 통신원 / KBNe-UK 대표
영국 국민들은 TV를 사랑한다. 지난 5월 24일자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10명중 1명은 배우자보다 TV를 선택하겠다고 했단다. 3명 중 1명은 TV를 보지 않아도 항상 켜둔다고 하고,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TV가 없다면 인생의 한 부분이 사라지는 거라고 답했단다.

이토록 사랑받는 소중한 방송이 정치화 되고, 특정세력의 선전도구로 스스로를 전락시킬 수는 없는 거다. 모르긴 몰라도 영국의 방송인들은 그걸 아는 것 같다. 어떤 방송과는 조금 다르게, 신문과는 더 많이 다르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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