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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정길화 MBC '세계와 나 W' PD

처음 눈길을 끈 것은 외신 기사 한 줄이었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대통령이 유엔에서 천연 코카(coca)의 무해성을 강조하면서 중인환시리에 코카잎을 씹어보였다는 내용이었다. 모랄레스는 볼리비아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으로서 차베스, 룰라 등과 함께 남미 좌파 정권 3총사의 한 축을 이루는 인물. 워낙 파격적인 언행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었는데 유엔에까지 가서 코카잎을 씹다니?

그때까지만 해도 코카(잎)와 마약 코카인에 대한 분별은 내 지식 창고에 들어 있지 않았다. 세계는 넓고 아이템은 많은 법. 5년 만에 방송 현업으로 돌아와 <세계와 나 W>를 하게 된 나는 월드컵을 앞두고 아프리카 쪽에서 아이템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주야장천으로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곧 코카와 관련된 속보(續報)가 눈에 띄었다.

▲ MBC '볼리비아- 코카의 변신' ⓒ
그것은 ‘코카 코야(Coca Colla)’의 등장이었다. 볼리비아에서는 코카잎을 원료로 하는 건강탄산음료를 개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코카 코야였던 것. 필경 미국의 ‘코카 콜라(Coca Cola)’를 의식해 도발적인(?) 브랜드를 단 것에 틀림없었다. 안데스에서는 오래전부터 원주민들이 고산 증세나 허기 등을 면하기 위해 코카잎을 씹어서 즙을 빨아먹는 습속이 있었고, 스페인 침략기에는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광산 노동에 투입하면서 식량 대신 코카잎을 씹게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떻든 원주민들에게는 오래된 전통인데, 문제는 이 코카를 화학적으로 가공하면 중독성이 강한 코카인(cocaine)이 되는 것. 졸지에 그들이 즐겨 찾는 코카가 마약의 주원료가 된 것.  

한편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등 남미에서 재배되는 코카는 자체 소비되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상당량이 코카인으로 만들어져 자국으로 유입되는 현실에서 이를 방치할 수는 없었다. 미국은 아버지 부시 이래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코카인 루트’의 단초인 볼리비아에 코카의 재배를 억제할 것을 요구해 왔다. 단속반을 투입해 코카밭을 갈아엎게 하고 고엽제를 공중 살포하기도 했다.

이전의 부패한 볼리비아 정권은 미국의 보조금 제도를 악용하면서 이에 순응해 왔으나, 코카 농민 출신이기도 한 모랄레스는 이를 거부하였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코카 양성화 정책은 미국과 외교적 갈등을 빚는 원인이 됐다. 이 와중에 등장한 것이 바로 ‘코카 코야’다. 유엔에서 “코카 콜라는 되고 왜 우리는 안 되느냐”고 일갈하더니 정말 ‘코카 코야’를 만든 것이다. 

36시간이 걸려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갔으나 취재는 여의치 않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수도 라 파스는 시위로 몸살을 앓는다. 모랄레스의 지지세력이었던 노동조합, 농민 등이 “변한 것이 없다. 나아진 것이 없다”며 도심 시위를 하고 예정되었던 관계자 인터뷰는 줄줄이 펑크다. 미국이나 코카 콜라 측의 반응도 궁금했으나 ‘노 코멘트’다. 볼리비아의 코카 재배 농민들은 외국 언론에 대한 불신을 공공연히 드러내었다.

▲ 정길화 MBC '세계와 나 W' PD

‘코카 코야’가 잘 팔리면 코카 재배 또한 늘어날 터. 그렇다면 합법적 수요 외에 코카인으로 흘러가는 음성적인 코카 또한 늘어나지 않겠느냐는 상식적인 의문에 대한 볼리비아 당국의 확실한 답변을 듣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다. ‘남미형 민족주의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모랄레스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그는 너무 바빴다. 계속적인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그는 파라과이로, 바티칸으로 날아갔다. 나는 허탈감을 우유니(Uyuni) 소금사막 취재로 달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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