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력 잃은 ‘가족의 페르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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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력 잃은 ‘가족의 페르소나’
[방송따져보기] 윤정주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 윤정주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 승인 2010.06.02 0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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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이 되면 생각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가족’이다. 또한 매년 이맘때쯤이면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아마도 가족의 소중함과 그 사랑을 일깨워주는 천편일률적 내용들의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닌 현대를 살아가기 위해 변해야만 하는 가족 구성원의 이야기를 통해 때로는 안타까움에 그리고 때로는 분노 때문에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SBS스페셜〉 가정의 달 특집 3부작 ‘가족의 페르소나’가 그것이다.

▲ <가족의 페르소나-제1부 아버지의 빈 집>

이 프로그램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아버지, 어머니, 자식이 아직도 19세기의 가면(페르소나)을 쓴 채 힘들고 괴로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총 3부로 나누어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1부 ‘아버지의 빈집’(5월 2일 방송)과 2부 ‘어머니의 봄날은 어디로 갔나’(5월 9일 방송)는 과거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현재 모습을 통해 사회 전반적인 의식의 변화 필요성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시대에 맞는 기획 의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중심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례를 잘못 선정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논점이 흐려지고 심지어는 왜곡되어 보이기까지 했다. 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례를 다룬 1, 2부에서 특히 그러했다. 

1부 ‘아버지의 빈집’은 권위적이고 무서운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부턴가 가족 속에서 스스로가 고립되어가고 그래서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이러한 주된 주제 속에서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했지만 이제는 늙고 병들어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가엾은 아버지의 모습을 오랜 시간 다루면서 초기 기획의도와는 달리 집안에서 권위를 잃어버린 과거 가부장적 아버지에 대한 불쌍함과 향수를 극대화시켰다. 특히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뒷굽이 다 닳은 아버지의 구두를 클로즈업해서 보여줌으로써 전체적인 의미는 퇴색되었고 가부장적인 아버지로의 회귀를 여운으로 남겨두었다.

2부 ‘어머니의 봄날은 어디로 갔나’도 사례를 잘못 선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부는 젊은 시절에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맞기도 하고 가난한 살림에 강제로 밥을 굶기도 하면서 고생한 60대 여성이 이제 살만하니까 치매에 걸린 이야기를 주로 보여주었다. 어찌 보면 그 시대에는 흔하기까지 한 이 사례는 제작자의 기획의도와는 정 반대로 현대 기혼 여성들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편하게 살고 있는지를 반증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21세기의 어머니들 또한 정도는 다르지만 가부장적 가족 문화 속에서 아직도 억압되어 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간과한 채 과거 어머니의 모습을 현대에 끌어다 놓고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말은 공허한 메시지로만 들릴 뿐이다.

이 프로그램이 초기 기획의도를 살리고자 했다면 과거의 이들의 모습들이 아니라 현재 3,40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례를 선택해야 했다. 그래야만 21세기에도 여전히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살고 있는 가족이 서로를 억압하고 있음을, 그래서 이제는 변해야 함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을 것이다.

모든 방송은 나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사실에 근거한 다큐멘터리가 가지는 위력은 가히 상상을 불허한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이 좀 더 적절한 사례를 제시하였다면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그냥 덮어놓고 살아왔던 우리 가족의 모습을 돌아보고 가족 구성원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 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선한 기획의 이 프로그램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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