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녕성 방송인 한국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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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녕성 방송인 한국 방문기
영원히 기억할 아름다운 순간들
한반도 통일에 기여하기 희망해
  • 승인 1997.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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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지난 5월 27일부터 6월 2일까지 연합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네 명의 중국요녕성방송청 방문단이 한국방문에서 느낀 소감을 글로 보내왔다. 이 글은 중국 한족(漢族)이 쓴 글을 함께 왔던 조선족 동포가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중국 조선족이 사용하는 어휘나 맞춤법이 우리와 조금 다른 점도 있지만 뜻이 통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원문 그대로 싣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부 용어에만 설명을 붙였으며, 띄어쓰기는 읽기에 편하게 조금 바꾸었다. <편집자>
|contsmark1|한국은 아름다운 나라이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기후가 좋으며 경치가 수려하다. 지난 5월 27일, 우리는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의 초청을 받고 한국의 방송텔레비전업에 대하여 일주일간 방문 고찰을 하였다. 짧디짧은 시간, 숨돌릴 새 없는 일정은 우리들의 고찰을 말 타고 꽃구경한 식에 불과하게 했지만 그 며칠은 우리에게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겨주었다.서울은 인구가 천만에 달하여 전국 인구의 4분의 1을 용납하여 인구밀도가 높기는 하지만 도시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널다란 아스팔트길을 지나느라니 아스랗게 솟은 63빌딩이 먼저 눈에 안겨왔고 그와 나란히 솟은 쌍둥이빌딩도 독특한 풍격으로 그 웅위로운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길가의 행인들은 다 소박하고 자기나름대로 편안한 옷차림이였다. 이곳 저곳에서 서로 같지 않은 교복을 입은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서로 다른 학교의 중소학 학생들이였다. 청년들은 거의 홀태바지 [이 글에서는 청바지를 말함]에 t적삼을 입고 그우에 편안한 쟘바나 시체식 [보기좋고 몸에 맞는]조끼를 걸치였고 신은 보통 가벼운 여행용 신이나 편리화를 신었고 여자애들은 잔등에 자그만한 가방을 멨는데 그것은 어깨에 메기보다 행동하는데 편리하였다. 남자들은 보통 양복차림이였고 여자들은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화려하게 입은 것은 아니였다. 한국의 방직품 특히 옷감천들이 우리 요녕성에서 잘 팔리고 있지만 한국 여자들은 옷을 그리 화려하게 입지 않았으며 화장도 짙게 하지 않아서 총적으로 깨끗하고 고상하고 우아하고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주었다.우리가 살고 있는 심양에는 조선족이 적지 않은데 그들이 만드는 풍미로운 짠지는 우리가 퍽 즐긴다. 이번에 한국에서 우리는 한국 밑반찬의 매력적인 진미를 진짜 맛보았다. 한국의 갖가지 밑반찬은 느끼하지 않고 시금하고 맵고 향기로와 우리의 식욕을 많이 돋구어주었다. 중국 채는 푸른 채의 볶구고 튀기고 한 기름끼 있는 여러 가지 육식품이 많다. 한국인은 고기를 상추같은 것으로 쌈싸 먹기를 좋아한다. 밥상에 오르는 푸른 반찬들은 아주 입맛을 당겼다. 그래도 우리는 중국 음식을 잊지 못해 우리가 들어 있는 근방에서 화교가 영업하는 덕순음식점에 가 한끼 군을 뗐다.[실컷 먹었다]한국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서 그곳 시민들이 가장 관심하는 문제의 하나는 집이라는 것을 알았다. 서울에서는 인구가 많고 땅값 집값이 비싸 괜찮은 집을 한 채 사자면 알심들여[계산도 많이 하고 돈을 절약해서] 장만해야 한다. 이것은 세계 각지 유사한 상황을 가진 도시의 정황과 비슷하였다. 외관으로 보니 여기 주민들의 주택들은 청결하였고 매 주민구역은 다 규획적으로 지어져 있으며 여러 가지 색갈의 아빠트들이 푸른 나무숲에 싸여 얼른거렸다. 63딜딩에서 굽어보니 한강은 푸른 면사포같이 웅위로운 서울 복판을 흐르고 다리는 하나하나의 무지개 같았고 거기에 여의도가 수려하게 자리잡고 남산우에는 텔레비전탑이 높이 솟아 있었다. 이 모든 정경은 사람을 매혹시켰다. 우리는 주인측의 초청을 받고 pd연합회 회장인 최선생 저택에 손님으로 갔다. 그것은 아주 온화한 가정이였다. 얌전한 안해, 사랑스러운 아들 온 공간이 기쁨으로 차 넘치는 것 같았다. 방을 보니 우리나라 집들 구조와 비슷하였다. 그들의 객실이나 주방이며 생활방식을 살펴보고나서 한국인의 생활은 이미 세계의 선진 조류속에 들어섰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한국인은 침대 생활을 하지 않고 온돌 생활을 하였다. 최선생은 이전에 mbc의 프로그램 제작인이였었다. 그는 40세가 좀 넘었는데 재간이 많고 세련되고 노련하고 성실하다. 그가 제작한 문화프로그램은 일찍 한국에서 대상을 받은 적이 있다. 이런 mbc의 걸출한 인재가 지금 pd연합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데 우리에게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겼다.서울 거리의 길들은 아주 넓다. 그래도 평균 네 사람에 차 한 대씩 있는 셈이여서 차길이 막히는 현상이 자주 생기군 한다. 차들이 달리는 속도가 비교적 빠르고 자전거는 거의 없으며 행인들은 인행도로 걷고 무질서하게 꿰질러 다니는 일이 없다. 한국인은 보통 대우, 현대, 기아, 쌍룡패[그룹] 등의 국산품을 쓰고 있다. 여기에서 한국 자동차 생산의 실력과 능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 정부와 인민의 민족공업을 보호하려는 강렬한 의식을 보아낼 수 있다.우리는 흥미진진하게 대우자동차 공장을 참관하였다. 이 공장 구내에서는 땅바닥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어디나 잔디와 나무, 아스팔트, 그리고 대우라고 새겨진 아름다운 화면들이 보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이 대우의 창조이며 도전이며 희생적 정신이란 것을 알게 되였다. 이런 정신적 격려 속에서 대우는 창건 30년래 신속한 발전을 가져와 매 일분간에 자동차 한대씩 생산하는 속도로 세상에 자기의 실력을 과시하였다. 지금 대우 제품은 국내시장에서 우세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120여개 나라와 지구에 수출되여 실력이 높은 대기업으로 부상되였다. 대우는 한국경제가 신속히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에 발을 뗐으므로 대우의 발전속도와 규모는 한국 경제발전의 출도라고 할 수 있으며 대우정신은 한국인민이 나라를 아름답게 건설하기 위하여 분발 전진한 미덕의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한국에서 우리는 kbs, mbc, sbs 등 방송사의 책임자들을 만났다. kbs의 부사장 최동호 선생과 안 본부장 등 분들이 우리를 접견하였으며 mbc의 사장 이득렬 선생과 sbs의 상무이사 임형두 선생 역시 우리를 열정적으로 접대해 주었다. 우리는 쌍방의 텔레비전 실무에 대하여 교류하고 나서 교류와 합작의 소망을 표달하였다. 방송텔레비전설비, 프로그램제작 방송과정, 인원초빙절차 등을 참관하고 난 우리는 한국텔레비전방송사의 기초시설이 비교적 좋고 기술장비가 비교적 앞섰으며 인원소질이 비교적 높으며 관리면에서도 자기 나라 사정으로부터 출발하였으며 과학성을 강조하였음을 느꼈다. 강원도 춘천문화방송사 유수열 선생 등 분들이 솔직하고 열정적인 면에 우리는 퍽 감동되였다. 유선생은 자기가 중국 한나라 황실 유견의 제 42대 후손이라고 말하게 되자 우리는 서로 한집안 식구같은 기분으로 한국특유한 풍미의 초대연에서 잔을 들어 즐겁게 마시며 이야기에 꽃을 피웠다.두 나라 거리가 멀지 않고 문화학술상 교류도 많았으니 방송텔레비전 합작에서도 서로간의 연계를 다그쳐야 하겠다고 모두가 느꼈다. 춘천시는 별로 큰 도시는 아니지만 매우 아름다운 도시여서 여행유람하기 좋은 고장이였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피곤하였지만 우리는 즐거움 속에서 몇번이고 유선생과 그곳 벗들을 회상하였다.한국인은 중국 벗들에 대하여 열정적이고 우호적이였다. 비록 우리들간에 말은 통하지 않았으나 황색피부에 검은 머리를 가진 동방인으로서 마음만은 통하여 한번의 미소, 한번의 손세[손짓]는 우리간의 거리를 가깝게 하고 감정교류가 되게 하였다. pd연합회의 피곤을 무릅쓰고 미소만을 보여주던 정호식 선생, 명랑하고 대범하고 뜨겁던 미스리, 임현옥 등 분들은 모두 우리의 훌륭한 벗으로 되였다. 우리들은 함께 교류하고 함께 방문하고 함께 유람하고 함께 물건샀다. 하루를 지내면 또 그만큼 우리의 우의는 두터워졌으며 매 한 장의 사진도 우리들의 아름다운 순간으로 되여 영원한 기억 속에 남게 하였다. 우리와 한국 벗들과의 교류에서 가장 관심사로 된 것은 한반도 통일문제였으며 우리는 남북통일에 공헌할 수 있을 것을 희망한다는 것을 여러 번 표시하였음을 잊을 수 없다. 평화를 그리며 행복을 추구하며 하나로 뭉칠 것을 갈망함은 우리들의 공동한 염원이다. 우리는 쌍방간의 합작이 신속하게 발전될 것을 충심으로 기원하며 벗들과의 재회를 기다린다!1997.6.15요녕성방송텔레비전청 대표단李淺楓(遼寧省廣播電視廳副廳長), 李力(遼寧人民廣播電臺副臺長)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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