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김제동’을 소비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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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김제동’을 소비하는 방식
[김세옥의 헛헛한 미디어]
  • 김세옥 기자
  • 승인 2010.06.04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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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제동씨의 토크쇼 하차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발단은 케이블 채널 엠넷(Mnet)의 <김제동쇼> 방영이 한 달 가까이 연기되면서 편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일던 가운데, 김씨 측이 지난 1일 “진행을 맡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 밝힌 것이다.

김씨 측은 토크쇼 하차의 뜻과 함께 첫 방송 예정일(5월 6일)을 며칠 앞둔 지난 4월 말 제작진으로부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 추도식 참석을 재고할 수 없냐는 요청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고, 이후 그의 하차에 대한 정치적 외압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논란의 아이콘’으로 김제동씨를 소비하는 정치권

▲ Mnet <김제동쇼> ⓒMnet
김씨의 하차 소식에 누리꾼과 언론은 물론 정치권, 특히 민주당이 즉각 반응했다. 김유정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곧바로 논평을 내고 “이명박 정권이 케이블 방송에 어떤 식으로 외압을 가했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정권에 쓴소리를 하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 통제하고 짓밟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김 대변인의 논평과 달리 김씨는 정권에 대해 쓴소리를 한 일이 없다. 노 전 대통령의 노제와 추도식의 사회를 본 게 정권에 대한 쓴소리는 아니다. 김씨를 TV에서 점점 마주하기 어려워진 현실에 대해 누리꾼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 정권에 대해 비판은커녕 어떤 정치적 의견도 개진한 일이 없는 그가 전직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를 애도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는 것으로 위로를 준 이후, 석연찮은 이유들로 TV 속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듯 인식되는 현실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지난해 9월 김씨가 KBS <스타골든벨> 진행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이후, 특히 선거(2009년 10·28 국회의원 재보선, 2010년 6·2 지방선거)때마다 “이명박 정부가 정권에 비판적인 연예인들을 퇴출하고 있다”며 김씨와 몇몇 방송인들을 정권 심판의 필요 이유처럼 내세우고 있다. 실례로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지방선거 8일 전인 지난 5월 25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현 정권의 무자비함을 비판하면서 김씨의 사례를 언급했다.

민주당의 문제제기가 틀린 것은 아니다. 김씨가 정권에 쓴소리를 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긴 하지만,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국민과 함께 애도하는 특정 방송인의 존재를 불편해 하는 권력의 눈치를 보는 집단이 존재하는 듯 인식되는 사회 분위기는 분명 문제가 있다.

때문에 정치권, 특히 민주당이 작금의 분위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김 대변인은 논평에서 김씨의 <김제동쇼> 하차와 관련해 정권의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김씨 측은 물론 엠넷 제작진도 외압 의혹에 동의하지 않거나 부인했다. 방송 관계자들도 정권에서 이른바 퇴출 명단을 내려 보내는 건 아니라고 한다. 단지 권력과 불편하기 싫은 ‘윗선’에서 알아서 ‘싫은 눈치’를 준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특정 방송인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에 대한 정권의 외압을 주장하는 건 어떤 효과를 낳을까. 답은 김씨의 사례 속에 있다. 혹자의 표현대로 ‘숨만 쉬어도’ 정치적으로 해석되며 ‘논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1%의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은?

김씨는 자신을 둘러싼 현실 하나하나에 정치적 의미가 부여되는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97~99%의 원인은 항상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중략) 나름 열심히 만들었지만 완벽한 프로그램, 누구도 손댈 수 없는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했다. 내부 요인을 충분히 찾고 만일 외부 요인이 있다면 그것을 촉발시킨 분들한테 여쭤보시라.” (5월 29일자 <시사IN> 인터뷰)

그가 말하는 1~3%의 외부 요인은 무엇일까. 외압은 없었다고 하면서도 <김제동쇼> 방송을 며칠 앞두고 김씨에 노 전 대통령 추도식 참석에 대한 재고를 요청한 제작진들의 태도 속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

방송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회의 다양한 의견과 가치를 담아냄으로써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김씨의 사례뿐 아니라 그간의 역사에서 확인하듯 현실의 방송은 권력에 따라 눈치를 덜 보기도, 더 보기도 한다.

때문에 권력의 성향에 따라 방송이 눈치를 보며 스스로 지향해야 할 가치를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해선  어떤 권력이 들어서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위상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씨를 반(反)정부의 ‘논란의 아이콘’으로 등극시킬 게 아니라, 정권의 동업자가 하루 아침에 방송사의 수장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방송 제작 등에 외부의 어떤 힘도 개입하지 못하도록 ‘독립’을 규정한 법과 제도의 개선 노력 말이다. 

이런 법과 제도의 개선을 관철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이 없는 ‘비판의 말’은 공허할 뿐 아니라, 특정 방송인의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현실을 대여 공세의 ‘꽃놀이패’로만 인식하고 있다고 오해를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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