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대한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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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대한 두려움
[PD의 눈] 지원준 독립PD
  • 지원준 독립PD
  • 승인 2010.06.0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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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국에 와 있는 독일 사람들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전통 한옥에 살고 있어, 사석에서 자연스레 한국의 가옥 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됐다. 독일 사람들은, 전통 한옥이 놀라울 만큼 여름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한옥의 구조로 미루어 보아, 수백년 전의 한국은 지금의 한국보다 더 더웠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아 갔다.

‘Trinken Sie, Bier!’ 이외의 독일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저 사람들이 범한 오류를 내가 범한 적이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그 동안의 해외 촬영의 기억을 죄다 더듬느라고, 그들에게 별다른 설명을 해 주지 못했다. 보존돼 있는 한옥이 상위계급들이 살던 그럴싸한 기와집들뿐이니, 엉뚱한 결론에 이르렀다고 해서 독일 사람들을 욕할 바는 아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감사해야 할 상황이었으니, 취재를 다니고 그 결과를 공표하게 될 수밖에 없는 PD는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경구를 피부로 느끼게 해 주고, 진지하게 반성할 기회를 만들어 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번 인도 촬영 때, 예기치 못한 사건들 때문에 촬영지로 가지 못하고 관광지에 한 동안 머물러 있어야 했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니, 전통적인 인도 집의 구조에도 눈이 가게 됐다. 한옥과 발상이 반대여서 그렇지, 인도의 집 구조도 더위에 최적화된 형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관광지에 남아있는 상위계급들의 그럴싸한 집에 한 해서다. 촬영지인 시골로 가면 너무나 낯익은 집들을 볼 수 있다. 지붕이 기와 비슷한 것이라는 점만 빼면, 영락없는 한국의 토담집들이다. 외부와 통하는 창이 없거나 아주 작다는 것도 공통점인데, 이것은 추위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다.

마땅한 연료가 없어 소똥을 말려서 밥을 짓고, 자신이 소유한 소가 없으면 몇 km를 등산해서 나무를 해 와야 하는 서민들에게 난방장치는 언감생심이니, 가옥구조를 추위에 최적화시키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매일같이 40도가 넘어가는 곳에서 웬 추위 타령이냐고 의아해 하실 분들도 있겠으나, 겨울에 아열대 지역을 취재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다 안다. 어설프게 따뜻해서 난방 장치가 없는 것 보다는 차라리 아예 추운 것이 더 낫다는 점을. 밤새 오들오들 떨다가 뜨거운 햇볕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를.

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곳이면 어디가나 느끼는 일이지만, 귀족들은 더위를 두려워하고, 서민들은 추위를 두려워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서민들은 더위와 싸워 이길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최저 기온이 30도를 넘고, 최고 기온은 당연히 40도가 넘어가는 촬영지에서, 본격적으로 촬영을 진행해 보니, 제일 먼저 ‘퍼지는’ 스태프는 의외로 현지에 사는 브라만이었다. 더위에 제일 먼저 지쳐서 ‘비리비리한 PD’로 놀림 당할까봐 걱정하던 나에게는, 솔직히 고마운 일이었다.

▲ 지원준 독립PD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것 같다. 야외를 싸돌아다녀야 하는 PD들에게는 난감한 계절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 촬영도 없는데, 아스팔트 바닥에 나 앉아야 하는 PD들도 생겼으니, 그 PD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더욱 높을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땡볕아래를 누벼야 할 때, 김치전도 부쳐질 아스팔트 위에 앉아 자리를 지켜야 할 때, 한번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더위를 두려워하는 것은 귀족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나는 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아픔을 드러내 공론화시키는 직업을 택하였으니, 수많은 서민들과 마찬가지로 더위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나는 결코 ‘비리비리한 PD’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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