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야당엔 독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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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의 지역이야기]

나도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기뻤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이렇게 탄식했다. ‘아! 또 한 번 야당이 반성할 기회를 놓치는구나.’ 물론 선거 후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도 ‘우리가 예뻐서 표를 준 것은 아니다’며 ‘쇄신’을 외치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진보·개혁세력 대통합’도 빠지지 않는다. 쇄신도 좋고 대통합도 좋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본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정말 잘 할 수 있도록 정당 차원의 뒷받침을 해주는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당은 여야를 막론하고 지방을 무시해왔다. 적어도 내가 경남에 살면서 지켜본 바로는 그랬다. 선거 때나 챙겨보는 대상일 뿐 개표만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잊어버린 게 지방이었다. 그 후엔 어렵사리 당선한 개인의 제팔 제흔들기식 활동에 맡겨버렸다. 그러다 보니 한나라당 일색인 지방의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설 자리는 좁았다. 그들은 ‘왕따’ 당하는 게 무서워 적당히 한나라당 의원들과도 타협했고, 그들과 함께 ‘유람성 외유’도 다녔으며, 명절에 배달되어 오는 이런 저런 선물도 내치지 못했다. 이렇게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 둘 ‘공범’으로 엮이다 보면 정작 큰 일이 닥쳐도 제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 지난 3일 새벽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가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아까 ‘선거 때나 챙겨보는 대상’이라고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선거에서도 정당이 제대로 하는 건 별로 없다. 단지 공천을 주고 선거운동을 거드는 것 말고는 정작 정당의 핵심기능이라 할 ‘정책’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건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거대담론에 해당하는 강령이나 정강 정책은 있을지언정 구체적이고 세심한 ‘지역별 정책’을 갖고 있는 정당은 적어도 지금까지 없었다.

어쨌든 이번 지방선거로 민주노동당은 적어도 경남에서 한나라당에 이어 제2당으로 자리를 굳혔고, 민주당도 나름대로 교두보를 확보했다. 진보신당도 실력을 보여줄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오늘의 작은 승리는 내일의 독배일 수도 있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에 들어간 그들이 ‘확실히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오히려 더 큰 실망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어쩌면 그동안 ‘진보’라는 포장지 속에 숨겨져 있던 얕은 실력이 속된 말로 뽀록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실제 이번에 지방의회에 진출한 ‘진보’의 면면들을 보면 그의 됨됨이나 실력이 의심스러운 사람들도 몇몇 눈에 보인다.

▲ 경남에는 김두관 당선자만 있는 게 아니다. 적지 않은 야권 후보들이 지방의회에 진출했다.
그들을 예의 주시하며 벼르고 있는 언론도 있을 것이다. 정적(政敵)들 또한 호시탐탐 그들의 ‘실수’를 노릴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정말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질 시비나 도덕성 문제라도 일으킨다면 진보 개혁진영 전체에 치명상을 입힐 가능성이 높다. 유권자들의 입에서 ‘진보나 보수나 그 놈이 그 놈’, ‘시켜줘 봤더니 다 똑같은 놈들’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우리나라의 진보정치는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쇄신’을 이야기하면서 ‘수권능력을 갖춘 대안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바로 그런 정당이 되려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에서부터 진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여기서도 ‘대안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선 총선도 대선도 없다.

▲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

그래서 하는 말이다. 우선 지방의원을 포함한 각 정당의 공직자 윤리규정을 세세한 부분까지 다시 손질하고 철저한 재교육을 거쳐야 한다. 거기에는 설이나 추석 명절에 들어오는 작은 선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해외 여행에 동행하는 기준에 대한 것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바로 여기서부터 한나라당 의원들과 확실한 차이를 보여주면 국민들은 환호할 것이다. 또한 중앙당은 물론 광역 시·도당의 정책 연구 및 개발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소속 지방의원들을 대상으로 예산 분석은 물론 행정사무감사 등 디테일한 의정활동에 대한 교육을 일상화해야 한다. 대안정당이 뭐 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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