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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영국=배선경·성민제 통신원

드디어 월드컵이다. 모두 함께 함성 지를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선 갑자기 월드컵 중계에 대한 볼멘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렇다면 이곳, 영국은 좀 다를까?

우선 영국은 BBC와 ITV가 공동으로 월드컵을 중계한다. 중계를 위해 드는 비용도 공동중계의 이유가 되겠지만 정부의 까다로운 룰과 규제들 때문에 두 방송사가 공동중계의 역사를 이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영국에서는 월드컵 중계방송사의 자격을 갖추는 것도 까다롭다. 월드컵, 올림픽과 같이 Group A로 분류되는 주요 이벤트의 중계는 수신 권역이 95% 이상인 채널의 방송사만이 입찰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에 부합하는 채널은 공중파 채널인 BBC1, BBC2, ITV1, Channel4, Five뿐이다. 이 자격을 갖춘다 해도 상상을 불허하는 중계권료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방송사는 BBC와 ITV정도다.

실제 BBC/ITV는 1990년 월드컵에 대해서 300만 파운드 (현재 환율로 약 54억원), 2002년에는 5,500만 파운드 (990억원), 2010년에는 1억 1천만 파운드 (1,980억원)를 지불했다. BBC는 법적으로 스포츠 중계권 구매에 과도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기 때문에 매년 불어나는 위와 같은 금액을 홀로 감당하기 어렵다.

상업방송인 ITV 역시 아무리 광고수익이 막대할지라도 적자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단독 중계에 ‘올인’ 하지 않았다. 결국 BBC와 ITV는 공동중계를 선택함으로써 FIFA(혹은 중계권 판매 대행사)와의 가격 협상 테이블에서 보다 유리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BBC와 ITV의 월드컵 공동중계 속에는 물론 배울 점이 많다(방송사 간 긴밀한 공조, 편성 전략, 충분한 시청 권역 확보를 통한 알 권리의 충족 등).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을 먼저 인지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중계권 논쟁은 비교적 자유로운 시장 논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FIFA의 독점에 대한 국가의 보호 시장 속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방송규제기관인 오프콤의 까다로운 중계권 입찰 조건을 만족하는 방송사라 해도 중계권 입찰 전에 반드시 오프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특히 독점 중계를 위해서는 오프콤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고, 타 방송사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 이러한 규제는 1992년 프리미어리그가 SKY의 어마어마한 중계권료를 등에 업고 상업 리그로 독립하면서, 국가적인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만들어졌다.

이러한 영국의 방송 정책은 머독의 SKY와 같이 씀씀이가 큰 경쟁 채널에 월드컵 중계권이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주었을 뿐 아니라 공중파 방송사들간의 협력과 상생의 길을 내준 셈이 되었다. 한 예로 독일 미디어재벌인 Kirch가 영국에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중계권료 1억 7천만 파운드(약 3,060억원)를 요구했을 때, 공동중계를 하는 BBC와 ITV는 스스로 현실적인 시장 가격을 책정하여 제시했고, 결국 3분의1 이하의 가격에 중계권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BBC나 ITV라고 해서 독점중계에 대한 욕심이 없을까? 월드컵 같이 혼자 잡고 싶은 황금물고기를 공유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와 배경이 있다. 누구나 합리적인 대답은 알고 있지만 실제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룰이 필요한 것 같다. 싱가포르처럼 시청자에게 특별 월드컵 시청료를 걷게 되는 상황으로 치닫지 않으려면, 특별한 시장에 어울리는 특별한 룰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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