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중계 뒤에 벌어진 방송계 ‘막장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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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지난 6월2일 지방선거에서 MB정부와 한나라당은 야당에 완패했다. 거침없는 국정독주에 국민은 주저 없이 엘로카드를 들었다. 그러나 MB정부의 거친 플레이는 계속되었다. 4대강 사업은 지속되었고 세종시 수정안문제로 국회를 교착시켰고 전시작전권 이양을 늦췄다. 특히 방송독립에 대한 무도한 백태클이 행해졌다.

MB정부는 언론장악을 위한 변칙 플레이를 계속했다. 조·중·동 종합편성채널 선정의 선결 과제인 KBS 수신료 인상을 위한 순서 밟기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MBC에서는 노조원 등에 대한 대량 징계가 이뤄졌고, 월드컵을 독점중계한 SBS는 방송의 상업화를 더욱 가속화 시켰다. 종편 진출을 위해 조중동은 바삐 움직였다. 월드컵 중계 뒤에 방송계에선 피 튕기는 ‘막장 월드컵’이 진행되었다.

2008년 여름 베이징올림픽 개막에 맞춰 정연주 사장을 해임시켰던 KBS(이사회)는 이번에는 사장이 키를 잡고 ‘수신료 인상’을 속공으로 진행했다. BCG(보스턴컨설팅그룹)의 경영진단보고서를 핑계로 발동을 걸어 월드컵 기간 동안 시청자위원회와 이사회 심의를 거치는 등 일련의 ‘수신료 인상’ 수순을 밟았다. 방송통신위원회 보고를 거쳐 국회에 상정할 수 있는 형식적 요건을 거의 완결 지었다. 골칫덩이 〈추적60분〉은 보도본부로 이과해 버렸다.

▲ MBC노조가 방송센터 10층 사장실 앞에서 ‘보복징계 해고학살 청와대의 특명인가’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채 부당징계 철회를 촉구하는 연좌농성을 벌이는 모습. 김재철 사장이 노조원들 앞을 지나가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MBC 김재철 사장은 월드컵 기간을 ‘노조 죽이기’에 활용했다. 월드컵 개막에 즈음해 41명에 이르는 징계자 명단을 발표했다(노조 조합원 21명, 직능단체장 8명, 보직부장 12명). 지역 MBC 사장들을 부추겨 지역 MBC 노조 간부 63명을 징계하게 만들었다. 총 징계자는 104명, 창사 이래 최대 규모였다. 경영적인 부분에서는 어떤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했던 그는 대량징계를 통해 ‘큰집’에 MBC 장악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시위했다.

KBS와 MBC가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동안 월드컵을 독점 중계한 SBS는 단독 드리블로 상업주의를 완성시켰다. 이번 독점 중계 파동 덕분에 SBS 윤세영 회장의 위상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급으로 격상되었다. KBS와 MBC 사장보다는 한 계단 격이 높고 방송통신위원회 최시중 위원장에 맞설 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재허가 파동 등으로 인해 기죽어 있던 윤 회장은 이번 사태를 통해 입지를 굳혔다.

나름 MB의 측근이라고 자부했던 KBS 김인규 사장은 윤 회장이 방송계 ‘원톱’으로 서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다. KBS는 SBS가 중계권 협상과 관련해 타 방송사들과 공동협상을 할 것처럼 하고 단독계약을 진행하는 ‘할리우드 액션’ 반칙을 했다며 윤 회장 등을 사기 및 업무방해, 입찰방해 등의 혐의로 형사 고소하기도 했다. 지주와 마름의 차이라고나 할까, 이런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SBS의 중계는 순항했다.

▲ KBS는 지난 5월27일 남아공 월드컵 단독중계를 강행한 SBS를 서울중앙지검에 형사고소했다. ⓒKBS
SBS는 KBS의 아킬레스건인 수신료 인상 문제를 거론하며 역공을 펼치기도 했다. 수신료 인상은 KBS 김인규 사장이 KBS의 30년 묵은 숙원사업이라며 ‘공영방송 재원 마련’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SBS는 6월15일 ‘KBS, TV 수신료 2.6배 인상… 올릴 자격 있나?’라고 보도한 것을 비롯해 “시민단체들은 KBS가 방만한 경영에 대한 내부 자성 없이 수신료 인상안을 내놓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습니다”라며 수신료 인상을 비판했다.

지상파방송 3사가 이전투구를 벌이는 동안 종합편성채널을 준비 중인 ‘방송 후보선수’ 조·중·동은 열심히 몸을 풀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연내에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물밑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한국언론학회가 주관한 ‘종합편성채널의 합리적 도입 방안에 관한 세미나’(6월17일)가 열리기도 했다.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던 후보 매일경제까지도 전 직원을 대상으로 종편설명회(6월8일)를 열며 의욕을 불태웠다.

▲ 야 5당과 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KBS 수신료 인상 저지 범국민행동'은 지난 29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출범식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PD저널
이번 월드컵에서 SBS의 상업성 추구는 거침이 없었다. SBS노조는 이를 SBS의 구조적인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SBS가 SBS미디어홀딩스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화되면서 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은 등한시하고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주회사 체제 하의 계열사들이 방송의 책임에는 무감각하고 오직 수익을 내는 데만 안달하면서 각종 문제를 야기했다는 것이었다.

조중동 종편의 등장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방송의 상업화가 가속화 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디어렙이 바뀌면 현재의 다공영 1민영 체제의 지상파방송은 1공영 다민영 체제로 바뀔 것이다. 여기에 조중동 종편까지 등장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업화가 진행되어 ‘방송에서 이런 것은 안 된다’하는 기준이 상당부분 무너질 것이다. SBS 노조위원장은 “SBS의 오늘은 조중동 종편의 내일이다. 이제 방송에 공영성과 공공성을 기대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라고 말했다.

▲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이런 방송시장의 격변기에 그동안 수비축구로 일관하던 야당이 6월 임시국회에서 역공에 나섰다. 지방선거 승리로 전열을 가다듬은 야당은 KBS 수신료 문제,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 문제, MBC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며 한나라당을 압박했다. 시민단체들도 수신료 인상 저지를 위한 연대를 구축하고 ‘빗장 수비’에 나섰다. 방송계 ‘막장 월드컵’은 이제 방송사별 조별리그를 마치고 본격적인 토너먼트에 들어섰다. 최종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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