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대한민국의 영상 매체들이 선택한 길은 이랬다. 남과 북을 아슬아슬하게 이어주던 ‘로드넘버원(1번국도)’을 무대로 펼쳐지는 사랑과 전쟁의 이야기와 포항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은 71명의 학도병들이 산화해간 영웅적인 무용담, 그리고 세월을 지나며 업그레이드 된 ‘전우’의 화려한 반공드라마까지.그야말로 ‘포화 속으로’ 지상파와 충무로가 뛰어든 것이다.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가 기획되고 제작되어 6·25를 전후로 일제히 등장한 원인은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큰 손의 기획이 작용했던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도 제작자들과 투자자들이 한국전쟁 60주년의 상품가치를 동시에 간파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듯한 지금의 현실과 맞아 떨어지는 기획의 기막힌 시의성에는 존경을 표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런 출중한 예측 기획이 몰고 올 흥행의 결과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지만 내용과 방향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3개의 작품 모두 상업적인 드라마이자 영화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시대정신의 범주를 훼손할 수 있는 면죄부를 부여받을 수는 없다. 〈로드넘버원〉은 전쟁을 멜로와 추억으로 소비하는 함정을 장착하고 있는 위험한 수작(秀作)이 될 여지가 있다.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 멜로물들이 역사를 얼마나 왜곡했었는지를 유추해 보면 될 것이다.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 리의 가슴 아픈 사랑으로만 남은 영화 〈애수〉는 전쟁 동안 숨져간 수천만 명의 죽음을 사랑 놀음의 배경으로만 기억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전우〉는 애국과 반공을 위해 똘똘 뭉친 마초들의 의리를 다루는 일종의 ‘사극’이 될 공산이 크다. 정해진 결말과 뻔한 내러티브 그리고 과장된 연기는 사극이라는 장르의 특징을 그대로 답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6·15선언까지 안방에서 TV를 통해 지켜본 시청자들이 시대착오적 작품에 어떻게 반응할지 자못 궁금하기는 하다.
〈포화 속으로〉는 문제적 작품이 될 것 같다. 논란의 중심에 선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문제투성이의 영화라는 의미다. 역사적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기본적인 수준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소비하는 모든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감동이나 교훈이 뒤죽박죽이라는 것이다. 〈포화 속으로〉가 반공 영화라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 것 같고, 젊은 영혼들의 순수함을 다룬 것이라면 연기와 연출 모두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300〉같은 ‘71’을 만들려는 액션을 꿈꿨다면 기술이 부족한 것이다. 더구나 지금 왜 ‘포항’을 지킨다고 나서는 영화가 나오는가? 혹시 포항 출신 누군가의 눈도장이 필요한 것인가?
마지막 한 작품이 남았다. MB정부가 제작한 ‘전작권 반환 연기 대작전’ 쯤 되겠다. 정말이지 이 작품은 이해와 설명이 불가한 난해한 작품이다. 천안함 침몰의 대응으로 보복 공격을 금방이라도 실행하려는 이 정부가, 전쟁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는 이 정부가, 어떻게 전쟁의 결정권과 지휘권을 스스로 반납하겠다는 것인지 백번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한반도의 생명과 재산을 미국이 세운 세계군사전략의 하위범주에 맡겨두면, 1994년의 북핵위기처럼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반도가 포화 속으로 말려들어갈 위험성이 늘 존재한다. 1994년 그때 미국은 YS도 모르게 북폭 계획을 세우고 실행직전까지 갔음을 잊지 말자. 한국전쟁 60주년의 진정한 교훈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