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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의 지역이야기]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요즘 들어 20년 넘게 신문밥을 먹어온 신문기자로서 자괴감이 든다.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총리실 민간인 불법 사찰’과 ‘검사 스폰서 비리’ 등 PD수첩의 특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청와대와 총리실, 정부부처는 물론 각급 법원과 검찰, 일선 경찰서까지 촘촘하게 ‘출입기자’를 두고 있는 신문사들은 왜 이런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을까?

게다가 두 사건 모두 〈PD수첩〉만 독점적으로 제보를 받은 사안도 아니었다. 민간인 사찰 건은 6월21일 국회에서 폭로된 후 〈PD수첩〉이 상세히 파헤치기까지 9일이라는 여유가 있었다. 검사 스폰서 건 역시 이미 〈PD수첩〉이 취재에 들어가기 전부터 수차례 진정이 있었고 웬만한 신문사는 비리 검사 리스트까지 입수해 갖고 있었다고 한다.
 
나라를 뒤흔드는 ‘PD수첩’과 신문기자의 굴욕

나는 신문기자들의 이러한 무력증이 배타적인 출입처별 취재시스템에서 기인한 바 크다고 본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기자와 출입처의 관계는 ‘공존공생’을 기반으로 한다. 이런 저런 부탁도 해야 하고 신세도 질 수밖에 없다. 각종 편의 제공은 기본이고, 접대나 촌지도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다보면 ‘검사와 스폰서’까진 아니겠지만, 해당 기관의 공보실은 넓은 의미의 ‘기자 스폰서’가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어쩌면 액수나 빈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검사 스폰서’와 별반 다를 바 없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기자실로 ‘출근’해 공무원들만 상대하다 보니 생각도 점점 그들과 닮아 간다. 기사에 대한 피드백도 주로 공무원에게 받는다. 그러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일반 시민의 관심보다는 공무원들이 관심 있어 하는 기사가 밸류도 높다고 착각하게 된다.

▲ 지난 4월20일 방송된 MBC 'PD수첩-검사와 스폰서'편. ⓒMBC
그래서 필경 〈PD수첩〉보다 먼저 검사 스폰서 건을 접한 법조 출입기자는 ‘별로 기삿거리가 안 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검사들과 폭탄주깨나 마셔본 기자들은 오히려 제보자 정씨를 ‘치사한 사람’으로 취급했을 지도 모른다. 이번 총리실 건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나서서 ‘철저한 진상조사와 엄중 문책’을 지시하기 전까진 이 사건의 밸류조차 제대로 판단한 신문이 거의 없었다. 이 또한 기존의 출입처 시스템을 극복하지 못한 요인이 크다.

그러면 출입처 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사실 나도 이번에 편집국장직을 맡고 나서 이 부분을 고민했다. 하지만 다른 매체들이 모두 주요 기관에 출입기자를 두고 있는 이상, 우리만 그 시스템을 해체한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컸다. 결국 출입기자는 두되 ‘배타성’을 완화시키는 쪽으로 절충했다.

사실 출입처별 취재시스템은 그 자체의 폐해보다 그것을 ‘배타적 권리구역’으로 생각하는 기자들의 굳어진 인식이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 마치 자신이 맡은 출입처는 같은 회사의 다른 동료기자가 침범해선 안 되는, 존중받아야 할 영역으로 여기는 것이다. 편집국장이나 데스크들도 그런 분위기를 암묵적으로 인정해왔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출입기자단의 ‘당고(담합의 일본말)’라든지 엠바고 남발로 인한 문제가 있어도 관대한 태도를 보여온 것이다.

출입처 넘나드는 취재 이뤄져야 신문이 산다. 그래서 우선 시민사회부를 기존 출입처 외에 취재분야를 나눴다. 기자 개인의 관심사와 전문성에 따라 생태·환경, 의료 및 의료행정, 노동·시민사회단체, 교통·대학·복지, 법률·여성·이주민 등 분야별 영역을 맡겼다. 그리고 그 취재분야에 따라 타 부서 관할인 경남도청이든, 창원시청이든 출입처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취재하도록 했다.

▲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또한 아예 아무런 출입처 없이 별동대처럼 영역을 넘나들며 취재할 기자 2명을 확보했다. 1명은 국장 직속, 1명은 온라인 뉴스 전담을 맡도록 했다. 물론 인터넷판에 먼저 쓴 기사라도 필요할 경우 지면에 활용할 계획이다. 그들을 통해 우리 신문이 지향하는 ‘동네밀착뉴스’를 개발하고, 시민들과 함께 문제해결 과정까지 함께 하는 ‘공공저널리즘’을 실천해볼 계획이다. 거듭 말하지만 출입처는 ‘의무방어구역’일 뿐이다. ‘권리구역’이라는 개념이 해체되어야 신문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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