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MBC 사찰, 일개 경찰관 독자판단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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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선’ 개입 여부 주목…“김재철 사장, 경찰청장 함께 책임져야”

경찰이 MBC 라디오 프로그램 생방송 스튜디오에 무단으로 진입해 인터뷰 대본을 요구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 ‘윗선’의 개입 여부를 두고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지난 12일 공개 사과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사건 진상을 둘러싼 의혹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MBC노조와 라디오 PD 등이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나선 가운데 MBC 사측의 대응에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 경찰청 정보2분실 MBC 담당의 박 모 경위는 지난달 28일 오후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생방송 진행을 앞두고 스튜디오에 무단으로 들어가 당시 전화 인터뷰가 예정돼 있던 채수창 강북경찰서장의 인터뷰 질문지를 요구했다.

박 경위는 생방송 시작 10분 전인 이날 오후 5시 55분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담당 김 모 PD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방송에) 채수창 서장이 출연하느냐”, “언제 나오느냐?”고 재차 확인했고, 통화 직후엔 MBC 방송센터 7층 생방송 스튜디오에 들어가 “채수장 전 사장 인터뷰 대본을 보러왔다”며 질문지 제출을 요구했다.

▲ 서울 여의도 MBC 방송센터 ⓒMBC
이 같은 사건이 알려지면서 MBC 내부는 크게 들끓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이근행, 이하 MBC노조)는 “경찰이 생방송 스튜디오에 무단으로 침입해 인터뷰 대본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한 일은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던 일”이라며 “이는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자 방송의 독립성을 현저하게 위협하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도발”이라고 성토했다.

서경주 라디오본부장도 “이번 일은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에 비견될 만한 일”이라며 “서울 경찰청장이 공개적,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논란이 거세지자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지난 12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공식 사과했다. 경찰은 해당 경찰관을 대기발령 및 감찰조사 처분했다.

그러나 경찰 측은 “스튜디오에 들어간 것은 잘못이나, 대본을 요구한 적은 없다”며 ‘사전 검열’ 논란을 일축했다. 이에 대해 MBC노조는 “물타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안준식 MBC노조 편제 민실위 간사는 “조현오 청장의 사과는 사과로 볼 수 없다”면서 “진상 규명 등의 대책이 미흡한 점도 심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한 경찰관의 공명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경찰 ‘윗선’에서 지시한 것인지를 두고도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건 당시는 채수창 서장이 양천서 고문 사건과 관련해 조현오 청장의 사퇴를 촉구한 직후였다. 때문에 MBC를 담당하는 박 경위가 과도한 충성심에서 채 서장 인터뷰 내용을 사전에 알아내려 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라디오 PD들은 “이번 일은 일개 경찰 기관원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질 수 없다”며 ‘배후’에 대한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최상재)는 지난 9일 성명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진 권력을 향한 줄서기와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법질서와 헌법적 가치조차 무시하는 독재적 사고로부터 나타난 필연적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전혜숙 민주당 원내부대표도 지난 1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방송사의 PD와 경찰 사이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며 “이 일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 또 다른 언론검열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을 김재철 사장과 경찰청장이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언론노조는 “경찰의 스튜디오 난입과 생방송 사찰은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땅에 떨어진 공영방송 MBC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라며 김재철 사장 책임론을 제기했다.

안준식 민실위 간사 역시 “이번 사건 해결의 주체는 노조나 라디오 PD가 아닌 회사가 되어야 한다”고 사측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노조는 조만간 노사 공정방송협의회를 통해 이번 사건의 경위와 사후 대책 등에 대해 논의할 방침이다.

라디오 PD들도 지난 12일 긴급 총회를 열어 정보 기관원 전면 출입 금지와 같은 실제적이고도 선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노조를 통해 이 같은 결의사항을 부사장에게 전달했다. MBC는 14일 임원회의에서 조현오 청장의 사과 수용 여부와 향후 대책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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