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화이트리스트 모두 없는 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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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하승수 정보공개센터 소장

다시 리스트가 문제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 김미화씨가 올린 글을 우연히 보았다. KBS내에 자신에 관한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를 확인해 달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 글을 읽고 김미화씨가 참 용기있다고 생각했다.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된 곳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권력남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김미화씨는 그 글 때문에 KBS로부터 고소를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미화씨가 용기있게 문제제기를 한 이후, 관련된 이야기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진중권, 유창선씨는 본인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도 KBS PD로부터 들은 얘기를 공개했다. KBS의 “TV 책을 말한다”라는 프로그램이 갑작스럽게 폐지된 배경에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출연을 불편해 한 윗선의 개입이 있었다는 얘기다.

▲ 김미화 트위터.

이에 대해 KBS는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의 문서는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록을 남기면 후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는데, 그런 제목의 문서를 만들 바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블랙리스트’라는 문서가 있느냐 없느냐는 이번 사건에서 쟁점이 아니다. 쟁점은 KBS 경영진이나 그 윗선에서 특정한 인물을 방송에서 배제하도록 지시했는지, 또는 그런 분위기를 조성해 왔는지? 하는 것이다.

사실 지난 2년간 일어난 일들을 돌이켜 보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최근에 총리실에 의한 민간인 불법사찰이 문제가 된 것처럼, 이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사찰 논란은 계속되어 왔다. 그리고 이 정권은 권력을 잡자 언론, 공공기관 등에서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던 정권이다. PD수첩 등 방송사의 시사보도에 대해 재갈을 물렸고, 정권을 비판하면 형사고소에 민사소송이 난무해 온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방송사의 출연에까지 관여하는 치사한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크게 놀라지는 않을 것같다.

반면에 이 정권에서 우대받는 화이트리스트(White List)도 있다. 인터넷세계에서 화이트리스트는 특정한 IP주소로부터 전송된 이메일은 메일 서버가 언제나 수용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얘기를 권력의 세계에 적용하면, 화이트리스트는 블랙리스트와 정반대되는 의미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즉 특정 인맥이라는 이유로 권력에 의해 우대되는 사람들의 명단을 화이트리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영포회처럼 정권핵심들과 지연으로 연결되거나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선진국민연대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그동안 권력의 단맛을 누려 왔다. 금융권 인사에까지 개입해 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놀랄 일이다. 기업의 자유를 부르짖는 정권에서 기업의 임원진까지 권력의 전리품으로 생각해 온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간에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는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임기가 보장된 자리들의 임기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게 임기제를 규정하고 있는 취지이다. 정권을 잡은 쪽이 굳이 논공행상을 하고 싶으면 정치영역이나 행정부 조직에서 하면 될 일이다. 낙하산이 맞지 않는 자리에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는 행태는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언론이나 기업인사에 정권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런 일은 민주주의의 기본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방송의 출연자 선정 관련된 얘기는 하고 싶지도 않다. 말하는 사람이 구차해지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 하승수 정보공개센터 소장

그렇지만 과연 이 정권에서 그동안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다음 정권에서는 5공 청문회에 준하는 ‘MB 정권 권력남용 진상조사 청문회’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특별수사기구에 의한 수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지금 나오고 있는 폭로들과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그런 권력남용은 반드시 심판대에 올려야 한다. 그것이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제도나 시스템 정비도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정의를 바로 세운 다음에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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