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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프랑스=표광민 통신원

사건은 릴리안 베탕꾸르의 집안싸움에서 시작되었다. 87세의 고령인 릴리안 베탕꾸르는 로레알 창업자의 딸로 현재 로레알의 최대주주이며 프랑스 3번째 갑부이다.

그런데 그녀의 외동딸인 프랑수와즈 베탕꾸르-마이어스가 어머니의 측근인 사진작가 프랑수와-마리 바니에를 고소했다. 프랑수와즈 베탕꾸르는 바니에가 고령인 어머니를 교묘히 설득해 수십억 유로에 달하는 수표와 그림 등을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바니에는, 릴리안 베탕꾸르가 선의로 자신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그런데 양측의 법정공방 와중인 지난 2009년 4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여 동안, 릴리안 베탕꾸르의 집사가 그녀의 자산관리에 관한 대화를 비밀리에 기록했다. 녹음된 것은 릴리안 베탕꾸르와 그녀의 자산관리회사 끌리멘느 대표 사이의 대화였다. 녹음분량은 21시간 정도이며 28개의 CD에 저장되어 딸 프랑수와즈 베탕꾸르-마이어스에게 전해졌다. 그녀는 이 CD들을 경찰에 제출했다.

베탕꾸르의 집안싸움은 여전히 법정에서 진행 중이다. 그런데 녹음내용이 공개되자, 예기치 않게 프랑스 집권여당 대중운동연합(UMP)에 큰 불똥이 튀었다.

녹음된 대화는 주로 릴리안 베탕꾸르의 자산관리 방법, 즉 스위스 계좌 등을 이용한 탈세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탈세방안을 의논하는 대화 가운데 정권 실세인 현 노동부 장관 에릭 뵈르트가 등장했다. 그를 통해 편법으로 호텔 건축 허가를 쉽게 받고 세금을 줄이자고 두 사람이 얘기했던 것이다.

정경유착이 드러나는 녹음 내용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은 인터넷 언론인 <미디어파트>였다. 2008년 만들어진 이 인터넷 신문은 유료로 운영되는 독립매체이다. 이 신문은 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만큼, 비판적인 기사를 쓰며 인기를 얻고 있으나 필연적으로 정부의 압력을 받고 있다.

지난달 16일 녹음내용을 자사 사이트에 요약 게재한 후에도 <미디어파트>는 여당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 여당 대중운동연합(UMP)은 재정난에 빠진 <미디어파트>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이번 사건을 자극적으로 부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UMP의 사무총장인 자비에 베르트랑은 이달 6일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미디어파트>가 ‘파시스트식’으로 여론몰이를 한다고 주장했다. 9일자 <르몽드>에 따르면, 사르코지 대통령 역시 “<미디어파트>가 스스로를 순교자쯤으로 여기며 정부를 함부로 대하고 있다”며 비난했다고 한다.

▲ 프랑스=표광민 통신원/ 프랑스 고등교육원(EPHE) 제 5분과 정치철학 박사과정
<르 피가로>는 9일자 기사에서 일련의 <미디어파트>에 대한 공격이 개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이번 스캔들에 대한 여당의 방어전략 가운데 하나라고 분석했다. 달리 <미디어파트>를 압박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파트>의 녹음내용 공개 직후, 릴리안 베탕꾸르와 사진작가 바니에는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미디어파트>를 고소했었다.

그러나 파리 지방법원은 이달 1일 “<미디어파트>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당한 정보를 제공한 것”이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녹음내용에는 눈을 감고 형식적인 법 논리로 언론사 기자를 수사하는 어리석음을, 프랑스 사법부는 저지르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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