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강용석’ 보도가 씁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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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옥의 헛헛한 미디어]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의 ‘여대생 성희롱’ 발언 파문이 불거진 지 일주일째다.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신문·방송이 잠잠하지만, 처음 3~4일 동안은 언제 우리 사회의 여성인권 감수성이 이렇게나 예민해 졌을까 놀랐을 만큼 여당의 대응(제명조치)은 빨랐고 언론, 특히 해당 논란을 최초 보도한 <중앙일보>를 비롯한 보수 신문들도 앞장서 강 의원을 호되게 몰아쳤다.

여당과 보수신문들의 ‘이례적인’ 강한 대응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계, 누리꾼들까지 갖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논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강 의원을 ‘제명’ 조치한 여당은 7·28 재보선을 의식했다는 지적이다. <중앙일보>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실행위원을 지냈던 강 의원이 지난 2000~2001년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액주주운동을 벌인 데 대해 ‘특수 관계사’로서 보복을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또 중앙과 함께 후속취재를 통해 강 의원 몰아치기에 나선 <조선일보> 등이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을 위한 ‘시위’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 <조선일보> 7월 21일 5면
모든 해석이 타당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역으로 모두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보긴 힘들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간 정치권에서 벌어진 갖가지 성희롱(혹은 성추행) 논란을 다룬 상당수 언론의 모습에선 ‘여성 인권 감수성’의 예민한 촉수 대신 힘의 역학관계에 기인한 ‘정치’의 냄새가 풍겼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8월 대선 당시 풍경을 떠올려보자. 당시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은 “마사지걸이 있는 곳을 갈 경우 얼굴이 덜 예쁜 여자를 골라야 한다더라”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하지만 해당 발언은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에선 한 차례도 기사화되지 않았다.

이에 앞서 지난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며칠 앞두고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경선 후보 사퇴를 했던 박계동 의원의 ‘술집 동영상’ 파문이 일었다. 해당 동영상은 박 의원이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성의 상반신 특정 부위를 만지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을 담고 있다.

해당 동영상이 공개된 직후 여성·시민단체는 박 의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지만, 여당은 당사자 통보로 끝나는 ‘경고’ 조치를 의결했을 뿐이다. 상당수 언론도 해당 동영상이 몰래카메라 형식이며 지방선거 기간 동안 공개됐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도’를 주장하는 박 의원의 반발을 수용, 단순 스트레이트 보도에 그쳤다.

반면 지난 2006년 2월 최연희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동아일보> 여기자 성추행 사건에 대해선 당 대표가 직접 나서 피해자와 해당 언론사는 물론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최 의원에 대한 의원직 박탈까지 이뤄지진 않았지만, 그 스스로 탈당을 결정토록 당내에서도 분위기를 몰아갔다. 그리고 최근의 강용석 의원 사건과 그에 대한 여당의 대응, 맹공을 퍼붓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계동 전 한나라당 의원의 성희롱·성추행 논란과 최연희·강용석 의원 성추행·성희롱 논란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대통령의 ‘마사지걸’ 발언이 알려졌을 당시에도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실한 ‘황금티켓’을 쥐고 있는 후보였다. 박계동 전 의원의 경우 피해자가 ‘술집 여종업원’이었다.

그러나 최연희·강용석 의원이 각각 손과 입으로 건드린 피해자는 유력 신문사의 여기자, 국내에서 명문으로 손꼽히는 대학의 여학생과 여성 아나운서 그리고 여성 국회의원이었다. 가해자의 ‘급’, 혹은 피해자의 ‘급’이 달랐던 것이다.

만약 강용석 의원이 여대생과 여성 아나운서 등이 아닌, 최연희 의원이 여기자를 성추행하고 변명이랍시고 언급한 “식당 여주인”, 혹은 박계동 전 의원의 동영상 속 등장한 여성 종업원에 대한 ‘성희롱 발언’을 했다면 여당은, 언론은 지금처럼 즉각적인  대응과 몰아치기 보도에 나섰을까.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가 ‘성희롱’ 의원의 가슴에서 배지를 떼어내는 결과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얘기들에 반가우면서도 입맛이 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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