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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축구 월드컵이 끝나니 무개념 월드컵이 한창이다.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은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여대생에게 “아나운서가 되려면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라고 말하고,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은 야당을 지지하는 대학생들에게 “북한에 가서 살아라”라고 말하고,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은 최저생계비 체험을 하고 “6300원으로 황제처럼 살았다”라고 말했다. 어느 여교사는 EBS 인터넷 강의에서 “남자들은 군대에서 사람 죽이는 법을 배운다”라고 말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 조선일보 7월 21일자 5면
강용석 유명환 차명진 그리고 EBS 여교사 이 넷을 대충 ‘무개념 4강’으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묶으면 여교사가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책임져야 할 사회적 지위도 아니고 발언의 수위에 있어서도 다른 셋보다 낮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단지 군필 남성을 비아냥거린 것만으로 들어야하는 비난이 너무나 가혹하다고, ‘무개념 정국’의 희생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교사는 병역의무를 져야하는 선량한 피해자인 보통 남성들과 이에 대해 가산점 특혜를 요구하는 일부 남성을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이 둘은 명백한 구분이 필요하다. 일부 여성들이 후자의 요구를 묵살하기 위해 여성의 임신을 알리바이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어떤 여성도 인생의 황금기에 원하지 않는 사람의 아이를 국가의 요구에 의해 낳지는 않는다. 군필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은 남성이 일방적으로 매도될 이유는 없다.

차명진 의원은 지난 7월23일과 24일 참여연대에서 주최하는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UP’ 릴레이 캠페인에 참여한 뒤, 2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하루 6,300원으로 세끼를 해결했다. ‘황제의 식사’였다. 최저생계비만 올리는 것으로는 답이 안 나올 것 같다”라고 적었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지적했듯이 차 의원의 이 말은 ‘최저생계비를 더 내려도 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서민의 아픔을 체험하자는 행사를 차 의원은 벼룩의 간을 빼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활용했다. 오뎅 한 꼬치만 먹으면 서민체험이 되는 대통령처럼 차 의원에게도 서민 체험은 관광지 ‘원주민 체험’과 같은 이벤트일 뿐이었다. 그의 잔머리에 한 대학생 트위터 이용자는 “차명진. 20원으로 수도세 내고 전기세 내고, 버스 타고, 세금 내고 약타먹고 10원 남겨와”라고 응수했다.

▲ 경향신문 6월 27일자 6면.
유명환 장관이 젊은 야당지지층을 친북세력으로 규정하고 “북한에 가서 살아라”라고 말하자 비난이 쏟아졌지만, 천리마를 알아 본 백락처럼 보수논객 조갑제씨는 홈페이지에 “‘친북은 북한에 가서 살아라’라고 한 유명환 장관 발언은 반역자와 정신이상자가 아니면 공감할 것이다”라고 평했다. 정부를 비판하면 친북이 되고 추방해야 할 이방인이 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견디지 못하면 달아나야하고 공감하지 못하면 정신이상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무개념 월드컵’의 우승은 강용석 의원 차지였다. 한나라당에 우호적인 보수일간지도 철저히 그를 버렸고 한나라당 의원들도 아무도 그를 방어해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보여준 ‘팀킬’ 신공은 가공할 파워를 자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예쁜 여대생 전화번호를 받아적고 싶어하는 남자’로,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을 ‘얼굴은 이쁘지만 키가 작아 볼품이 없는 여자’로 비판하는 등 아군 진영에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이 뿐만이 아니었다. 한나라당 여성의원들은 전부 민주당 여성의원들보다 못하다고 하고 60대 이상 의원들은 민주당 전현희 의원과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고 했다.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을 단 한 마디로 바보로 만드는 그의 능력은 탁월했다. 그를 제명 조치한 주성영 한나라당 윤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이전 술자리 추태가 환기되어 씁쓸해 했고 박근혜 전 대표는 유부남을 자극하는 섹시한 여성으로 묘사되어 민망해 했다.

이들 ‘무개념 월드컵’ 4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들이 보여준 ‘막말의 자유’가 아직 우리 사회에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증거로 해석해야 할까? 한쪽에서는 조그만 정부 비판에도 혹은 권력투쟁에 밀렸다는 이유로 사찰 당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입에 걸레를 문 듯 막말을 쏟아내는 사회, 이런 ‘막말 권하는 사회’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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