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의 실종, 시사프로그램의 공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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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의 실종, 시사프로그램의 공멸
의제설정 능력 상실, 비판 기능 거세…‘공영방송 KBS’ 책임론
  • 김고은 기자
  • 승인 2010.07.27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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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수정안 논란부터 천안함 사태, 검사 스폰서, 민간인 불법 사찰까지. 올 초부터 중요한 사회적 이슈들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특히 4대강 살리기 사업이나 무상급식과 같은 이슈들은 6·2지방선거에서 표심을 가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정도로 우리 사회 중요한 현안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의제들과 관련해 지상파 방송사 시사프로그램들이 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앞선다. 〈PD수첩〉 등 일부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사실상 시사프로그램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존재감을 잃고, 의제설정 능력마저 상실했다. 시사프로그램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고 있다.

〈PD저널〉은 지난 1월 1일부터 7월 25일까지 KBS·MBC·SBS 등 지상파 3사의 시사토론프로그램이 다룬 아이템들을 살펴봤다. 그 결과 KBS는 4대강, 세종시 논란 등 주요 이슈들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하며, SBS는 동계올림픽과 남아공 월드컵에 시사프로그램이 잠식당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KBS, 정권에 불리한 이슈 침묵=KBS는 1TV 〈생방송 심야토론〉, 〈취재파일 4321〉, 〈KBS스페셜〉, 〈시사기획 KBS 10〉, 2TV 〈추적60분〉 등 3사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시사보도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기간 KBS 시사프로그램이 다룬 아이템은 천안함 사태 등 특정 이슈에만 집중됐다.

▲ KBS '스페셜' 홈페이지
〈심야토론〉과 〈취재파일 4321〉은 천안함 의혹과 남북관계 등에 대해 해당 기간 각각 4회씩 방송했고, 〈KBS스페셜〉과 〈추적60분〉 등도 관련 사안을 다뤘다. 그러나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논란이나 4대강 살리기 사업 문제 등에 대한 심층 분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4대강을 다룬 방송은 지난 5월 〈취재파일 4321〉 단 1회뿐이었다.

KBS는 특히 의제 설정 기능을 MBC에 빼앗기다시피 한 상태다. MBC 〈PD수첩〉이 ‘검사와 스폰서’ 의혹을 고발해 사회 전반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민간인 사찰 대상이었던 김종익 씨를 독점 취재해 사건의 내막을 철저하게 파헤칠 동안 KBS 시사프로그램은 관련 의혹에 철저히 입을 다물었다.

민간인 사찰 파문은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인 지난 18일 〈취재파일4321〉에서 한 차례 다룬 것이 전부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 비평〉은 지난 16일 ‘폭로에 휘둘리는 언론’이란 제목으로 민간인 불법 사찰 논란을 ‘폭로 저널리즘’의 문제로 접근하는 한계까지 드러냈다.

■‘시사 전무’ SBS, 상업방송 한계=올해 거의 ‘스포츠 채널’과 다름없었던 SBS의 경우 시사프로그램이 사실상 실종된 상태나 다름없었다. 〈뉴스추적〉, 〈SBS 시사토론〉,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프로그램은 지난 7개월여 동안 천안함 사고와 지방선거를 제외한 대부분의 현안에 대해 외면했다. 4대강 사업은 다뤄진 적조차 없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SBS
그나마 올 초 〈시사토론〉이 세종시 수정안 논란과 사법제도 개혁 논란을 각 1회씩 다뤘을 뿐이다. 무상급식, 민간인 불법 사찰, 검사 스폰서 의혹 등은 SBS 시사프로그램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시사토론〉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아공 월드컵 등에 관해선 네 차례나 방송했다.

안정식 전국언론노조 SBS본부 공정방송실천위원장은 “시사프로그램이라면 사회 여러 현안들을 다루는 것이 기본인데 그런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평가하며 “앞으로 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 MBC 'PD수첩' ⓒMBC
KBS와 SBS의 부진 속에 상대적으로 돋보인 것은 MBC였다. 특히 〈PD수첩〉은 4대강, 무상급식, 천안함 사태 등 비교적 폭넓게 사회 현안을 다뤘으며, 각각 두 차례에 걸쳐 방송된 ‘검사와 스폰서’와 ‘민간인 불법 사찰’편은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100분 토론〉 역시 세종시 수정안, 무상급식, 사법제도 개혁, 천안함 사고, 전작권 전환 연기,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 등 다양한 이슈를 다뤘다. 또한 〈시사매거진 2580〉은 지난 18일 최근 뜨거운 이슈가 된 KBS 블랙리스트 논란을 방송 3사 시사프로그램 가운데 유일하게 다뤄 이목을 끌었다.

■‘자기 검열’ KBS, 내부서도 “부끄럽다”=이처럼 방송사들의 시사프로그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방송 전반의 비판 기능이 약해진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공영방송 KBS의 책임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달 논평을 통해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 유린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PD수첩〉의 ‘고군분투’ 앞에 ‘공영방송’ KBS의 모습은 더욱 초라해 보인다”고 꼬집기도 했다.

KBS 내부에서도 “창피하다”, “MBC가 부럽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성도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공방위 간사는 “4대강 문제나 용산 참사 등을 다루자는 얘기들은 있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다루지 못했다. 자기 검열 기제가 작동해서 그런 아이템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고, 위에서 적극적으로 막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들이 축적되어 지금 상당히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 특히 4대강과 세종시, 민간인 사찰 등 이명박 정권에 불리한 이슈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권력이 이를 이슈화 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고, 권력의 낙하산으로 내려온 경영진도 이를 원하지 않아 적극적으로 의제 발굴을 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영방송 KBS가 의제 설정 등 시사프로그램의 역할을 견인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전체 방송사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연성화나 비판적 역할의 거세를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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