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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영국= 장정훈 통신원

‘방송의 세계화’를 외치는 이유가 뭘까?

방송은 문화상품이다. 직접적 돈벌이의 수단을 넘어 한 사회의 문화를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 전파한다는 의미가 크다. 특정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 문화권에 존재하는 사람과 산업을 무의식중에 신뢰하게 되고, 관심과 호의를 품게 된다. 방송은 인간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시켜주는 수단으로 인식돼 긍정적 이미지를 창조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돈과 의미를 동시에 취할 수 있는 매력적인 산업이다.

이런 점에서 영국은 크게 성공한 국가다. 방송 콘텐츠를 팔아 막대한 현금을 벌어들이는 동시에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국’과 ‘런던;에 대한 로망과 가치를 심어 주고 있으니 말이다. 영국 땅을 단 한 번도 밟아 보지 않은 사람의 머릿속에도 영국에 대한 이미지는 존재한다.

▲ 1200명의 직원을 해고시킬 정도로 최악의 경영난에 시달리던 ITV는 독립제작사가 제작한 X Factor의 성공에 힘입어 지난해 25밀리언 파운드의 흑자를 기록했다. ⓒITV
영국 독립프로듀서연합회(PACT: Producers Alliance for Cinema and Television) 존 맥베이 회장을 지난 달 만났다. 그에 따르면 2001년 영국의 방송 콘텐츠 판매 수입은 850 밀리언 파운드였다. 그런데 지난해 판매 수입은 2.4 빌리언 파운드였다. 전세계 방송 포맷시장의 53%도 영국이 차지하고 있다.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 <Britain‘s Got Talent>, <X Factor> 등 세계적으로 굵직한 프로그램들이 모두 영국에서 탄생했다. 영국은 세계 최대의 방송 포맷 수출 국가다.

전 세계가 최장기 경제 불황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때, 영국은 어떻게 이런 신화를 이룬 것일까. 자본? BBC의 노하우? 채널 간 경쟁 시스템? 영어라는 언어적 무기?

이에 대한 답으로 존 맥베 영국 독립프로듀서연합회 회장은 지난 2003년 영국 의회가 독립PD와 독립 프로덕션에서 100% 저작권을 보장해주는 법안을 통과시킨 점을 들었다. 

저작권. 이 단순한 단어 하나의 의미는 위대했다. ‘2.5 빌리언 파운드의 신화’, ‘세계최대 포맷 수출국’의 신화가 이 한 단어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독립피디와 프로덕션은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과 포맷을 싸들고 세계시장으로 나갔다.

그전까지 독립피디의 프로그램에 돈을 투자하는 사람은 없었다. 프로그램이 완성되고, 전파를 타는 순간 저작권은 방송사로 귀속되고, 테이프는 방송사 창고에 처박혀 먼지만 먹고 있었다. 그런데 2003년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법으로 ‘저작권’을 보장받은 독립 프로듀서들이 자신의 열정과 혼이 담긴 프로그램을 전 세계 어디든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수익을 누구하고든 나눌 수 있는 권리가 생긴 것이다. 당연히 투자자가 생기고, 팔아주겠다고 나서는 에이전트가 생기고, 홍보대행사가 생겼다. 선순환 구조가 마련된 거다.

독립피디는 투자로 넉넉해진 제작비를 이용해 창의적이고 질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투자금을 환수하고,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 판매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3년 이전, 영국최대의 독립 프로덕션이 올린 수입은 40밀리언 파운드였다. 2009년 그 프로덕션은 딱 10배인 400밀리언 파운드에 달하는 매출실적을 올렸다.

이 지극히 상식적인 법. 제작자에게 저작권을 보장해주는 법은 프로그램의 질적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지난해 BBC 프로그램의 45%, ITV의 47%를 독립피디(제작사)가 제작했다. 넉넉한 제작비로 공중파 인하우스 프로덕션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쌓은 결과다. 저작권의 제자리 찾아주기로 방송사는 창의성이 뛰어난 양질의 프로그램을 공급받게 되었다. 독립피디에게 투자자가 생겨 방송사가 제작비 전체를 대야 하는 부담도 줄었다. 독립피디가 팔아서 남긴 이득의 일정지분을 챙겨주니 프로그램 판매에 대한 부담도 줄고, 판매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 국가는 국가대로 거액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효자를 얻었다.

▲ 영국=장정훈 통신원 / KBNe-UK 대표
영국의 방송 콘텐츠가 독립 피디와 함께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는데 <채널4>가 큰 역할을 했음도 간과할 수 없다. <채널 4>는 인하우스 프로덕션 없이 독립피디 (제작사)들만의 프로그램으로 방송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굳이 종편을 해야겠다면 이에 대해 연구해 볼 만한 하다.

캐나다, 독일,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가 영국을 따라 저작권 관련법을 개정했다. 그밖에도 많은 나라들이 영국의 뒤를 따르고 있다. ‘방송 산업 세계화’의 답을 영국에서 찾고 있는 거다. 우리도 늦지 않았다. “누군가 한국방송이 나아 갈 길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독립피디를 바라보라!” 이건 우스개로 만들어낸 패러디가 아니다. 그들에게 저작권이라는 무기를 쥐어주는 순간 대한민국산 방송 콘텐츠는 두려움 없이 세계로 달려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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