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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고 매운 자막방송

|contsmark0|얼마 전 모처럼 집에서 tv를 볼 기회가 있었다. 두 명의 mc가 나와 진행하는 오락 프로그램이었다. 토크 쇼 형식으로 초대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또 뒷 부분에는 자리를 바꿔 음식점에서 친구들과 함께 진행하는 형식으로 소위 요즘 뜨는 프로그램이었다.
|contsmark1|몇분 보다 보니 도대체 산만하고 정신이 없었다. 차분한 신세대 스타가 초대됐는데 mc가 무얼 묻고 출연자가 무얼 답했는지 머리 속에 남아 있지를 않았다. 화면에는 끝없이 문자 자막이 뜨고 방청객의 웃음소리, “어~”, “아유~”하고 이어지는 탄성소리는 전체적인 맥락을 끊어 놓았다. 방청객의 참여로 전체적으로 흥겨운 분위기가 고조될 수는 있겠지만 지나친 웃음과 탄성 때문에 출연자들이 얘기하는 것마저 방해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contsmark2|시간 죽이는 셈치고 자막이 몇 개나 되나 하고 세어 보았다. 60분짜리 프로그램에서 15분만에 자막의 수가 100개를 기록했다. 자막 가운데는 사회자 멘트로 한 이야기가 그대로 자막으로 뜨는 일이 허다 했다. 또한 ‘쑥스럽게 웃는…’ 이라든지 ‘웃음을 참지 못해 또 ng’라는 식의 지문, 해설적인 성격의 자막들도 많았다. 도대체 시청자들은 무얼 느끼라는 말인가.
|contsmark3|tv를 보면서 출연자의 표정에서 당혹함을 느낄 사이도 없이 “당황한 000”이란 자막이 떴다. 순간 나는 내 의식을 해킹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채널을 돌렸다. 다른 곳에서는 떼거지로 나와 과거 경험담을 늘어놓는 또 다른 오락 프로그램이 흐르고 있었다. 비록 자막의 숫자는 적을지 몰라도 역시 출연자들의 얘기가 자막으로 다시 뜨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contsmark4|오락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다른 교양 프로그램에 까지 자막 홍수가 전염이 되고 있는 것은 왜 일까.
|contsmark5|무슨 말을 하는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대사에 자신이 없는 어설픈 방송인들이 내뱉는 거친 발음이 아무리 좋은 방송음향 시스템으로도 제대로 시청자들에게 전달이 안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도 아닐 것이거니와, 또한 청각 장애인을 위한 배려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을 자막이 언제부턴가 한, 두 프로에서 시작돼 이제는 모든 오락 프로그램의 기본 사양이 되어 버렸다. 일본 방송의 영향이라는 설명도 있다.
|contsmark6|어쨌든 바보상자 tv를 더욱 바보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시청자들은 이제 정말로 바보상자 앞에서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느껴야 하는 감정까지도 자막으로 친절하게 정의를 해주기 때문이다.
|contsmark7|어찌 되었든 지나치게 많은 자막은 시청자들의 상상력과 사고의 한계를 긋는다. 아무 맛없이 맵기만 하여 입안이 얼얼해지는 낙지볶음처럼 쉴 새 없이 자막이 흐르는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조미료와 양념만 잔뜩 들어간 음식을 먹는 듯한 느낌이 든다.
|contsmark8|연출자의 입장에서는 자막을 이용해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훨씬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리 그래도 프로그램의 맛은 연출자가 영상을 어떻게 꾸미는 가에서 나온다. 그것이 신맛이든 단맛이든 맛을 느낄 자유는 시청자의 몫이다. 인스턴트처럼 천편일률적인 것말고 오래 곰삭은 청국장 같은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대한다.
|contsmark9|문규학 소프트뱅크 부사장|contsmar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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