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기분’은 엄연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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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의 언니가 간다]

지난 8월 14일 <조선일보>에 “성범죄자의 아내 얼굴 못 들고 다녀…나와 내 딸이 무슨 죄 있나”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성범죄자 알림e라는 정부 운영 사이트에서 19세 미만 청소년과 유아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 중 재범 확률이 높은 이들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한 것에 대해 가해자 가족의 ‘고통’을 보도한 것이다.

이 사이트에서 아버지 얼굴이 공개된 딸은 얼굴은 들고 다닐 수 없고 매일 죽어버리고 싶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이삿짐 센터에서 일하는 어떤 이는 혼자 집을 지키는 여자 아이에게 말타기 놀이를 하자며 음부를 쓰다듬었다. 성적인 의도는 없었으며 아이가 싫어하는 것 같아서 얼른 집을 나왔다 한다. 그의 얼굴과 이름은 사이트에 공개되었다. 그의 아내는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 한이 있어도 피해자 동네와 학교에 찾아가 이 사실들을 떠벌리고 싶다. 보복이 보복을 낳는다고 했다. 어디 한 번 똑같이 고통을 느껴봤으면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한다.

▲ 조선일보 8월14일자 B4면.
동거녀 딸의 가슴을 만지고 입을 갖다대 신상공개 처분을 받은 이의 어머니도 분통을 터뜨린다. 그 여중생이 자신의 막내 아들을 먼저 유혹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냥 한번 툭 건드린 걸 가지고 막둥이가 밥도 못 먹고 죽게 생겼다고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른다. 아들이 회사를 그만둘지 말지 고민 중인 것도 속상한 일이다. 조카가 자는 틈에 음부를 쓰다듬었던 이의 전부인은 <조선일보> 기자에게 “이미 가족끼리 다 정리가 끝난 일인데 왜 그걸 인터넷으로 남에게 알려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다. 과거 강간 전력이 있는 이는 중풍에 걸렸다. 거동이 불편하지만 동네 아이를 용돈 핑계로 집으로 들어오게 해 성추행을 저질러 전자발찌를 차고 있다. 그리고 그걸 차고 있는 것만으로 우울하다고 한다. 그 아내는 남편이기 환자이기 때문에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환자가 아닐 때 강간을 저질렀을 때는 어떻게 이해했던 것일까.

처음 기사를 읽었을 때는 정말로 성범죄자 가족이 고통을 당하고 있나 싶었지만 읽다 보니 이런 가족 분위기에서 자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성범죄를 아무렇지 않은 것이라고 인식하고 행동하게 된 게 아닌가 싶어 기가 막혔다. 남의 가슴 좀 툭 친 것 가지고 뭘 그러냐, 중풍 환자니까 이해할 수 있다, 우리 가족끼리는 정리가 다 끝난 일이니 남이 참견할 일이 아니다, 하는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성범죄가 무엇인지 개념이 있기나 할까.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범죄가 무엇인지 개념이 있기나 할까. 그냥 귀여워서 만진 것, 장난 한 번 쳐 본 것, 그러다가 여차하면 네가 먼저 꼬드겼다로 넘어갈 수 있는 사고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억울하다는 말이 나온다 싶다.

게다가 남편의 신상공개가 된 것에 분노하며 감옥살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피해자 가족과 학교에 찾아가서 ‘떠벌리고 싶다’는 아내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떠벌릴’ 생각인 것일까. 과연 무엇을 떠벌리고 싶은 것일까. 저 계집애는 이미 우리 남편한테 버린 몸이라고? 그냥 좀 만진 것 가지고 신고까지 하는 매몰찬 인간들이라고? 도대체 떠벌릴 말이 뭐가 있어서? 뭐가 저렇게 당당해서 감옥살이를 하더라도 떠벌리고 싶은데다 그 고통을 똑같이 당해 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고통을 똑같이 느껴 보라는 그 말이 가장 기막힌 구절이다. 그들에게 성추행 피해자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있을 수 있는 일’ 일 뿐. 

▲ 김현진 에세이스트
이 기사는 ‘신 연좌제’라는 표현까지 쓰며 범죄자 가족의 인권 역시 생각해야 한다고 마무리된다. 죄는 남편이 저질렀고 아버지가 아들이 저질렀는데 왜 나까지 기분 나빠야 하다니 속상해 죽겠다는 것이다. 어릴 때 당한 성추행의 기억이 얼마나 질기게 가는지, 그 고통의 크기라든지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고 가해자 가족은 그저 ‘쪽팔린다’고 호소하고 있는 모양새다. 하긴 인터넷 사이트에 쪽을 팔긴 했다만 그게 쪽팔려서 괴롭다면, 쪽팔릴 짓을 해서 쪽팔린 것이고 그런 가정 분위기를 만든 건도 좀 쪽팔려야 할 일이다. 동네에 얼굴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괴로운 것은, 동네에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할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닌가. <조선일보>가 생각해 보자고 하는 것은 범죄자 가족의 인권이 아니라 범죄자 가족의 ‘기분’이다. 죄 지은 다음 죄 지어서 창피한 기분까지 알아달라는데 어린 피해자들은 과연 지금 기분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있을까. ‘인권’과 ‘기분’은, 엄연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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