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를 위한 영화 읽기- 할 하틀리의 ‘T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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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를 위한 영화 읽기- 할 하틀리의 ‘Trust’
세상의 부적응자들에게 보내는 신뢰와 사랑
  • 승인 2001.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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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뉴욕의 고다르’, ‘컬러의 자무쉬’로 불리는 할 하틀리는 80년대를 가장 건강하게 계승하며 뉴욕을 지키는 인디감독 중 한 사람이다. 미국영화계에서 뉴욕을 지킨다는 의미는 할리우드와 타협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고, 이는 곧 상업주의로 흐르거나 감독의 독창성을 희생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contsmark1| 우리에겐 낯선 이 감독은 타란티노나 로드리게즈와 함께 뉴욕 인디영화 2세대의 대표주자이다. 그러나 하틀리는 이들과는 또 다른 종류의 인디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하틀리는 타란티노 류의 ‘범죄적 인간’과는 구별되는 ‘고뇌하는 인간’을 창조해낸 영화들로 사랑 받아 온 감독이다.
|contsmark2|하틀리의 영화는 액션과 긴장감 넘치는 변변한 장면 하나 없다. 그러나 그의 영화엔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건 아마도 그가 즐겨 쓰는 고다르 식의 장르적인 내러티브 관습의 파괴와 호감을 주는 스타일일 것이다.
|contsmark3| 그는 폭력적이고 충격적인 오프닝으로 영화를 출발시키는 등 내러티브 관습을 수시로 파괴한다. 딸이 아버지의 따귀를 때려 아버지가 죽는 것으로 시작되는 ‘트러스트’의 도입부에서처럼 전형적인 플롯구성과는 상이한 방식으로 영화를 출발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유발하는 방식을 자주 쓴다.
|contsmark4|그러나 이 최초의 긴장은 영화가 전개됨에 따라 이야기의 중심에서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관객들은 계속해서 호기심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의 영화에는 감독의 말처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그런 인물’들, 정말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contsmark5|이들이 지닌 전형성과 참신함은 관객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트러스트’의 주인공 역시 그러하다. 폭력적이고 전제적인 홀아버지와 함께 사는 주인공 매튜는 전과기록도 있고 회사에서 모니터를 던져버리고 회사를 관둘 만큼 사회에 대해선 적대적이고 부적응자 이지만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아 아버지에게 매맞을 정도로 아버지의 횡포엔 대항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contsmark6|매튜는 철학책을 읽고 술집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오존층파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아버지가 참전기념품으로 받은 수류탄을 들고 다니면서 사회에 대한 불만을 수류탄에 불어넣는다. 이렇듯 집밖에서의 매튜와 집안에서의 매튜는 정반대이다.
|contsmark7|매튜는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화되며 살아가면서도 스스로 갈등하는 인간상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려는 감독의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캐릭터이다. 하틀리의 주인공들은 대개 이렇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감독은 이런 인물들을 통해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적 관계를 그 희망으로 제시하고 있다.
|contsmark8| 한편, 하틀리 영화에 호감을 가지게 되는 다른 이유는 외형적으로 멜로드라마(혹은 soap opera)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항상 이야기는 두 남녀의 만남에서 시작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끝난다.
|contsmark9|그러나 통속적인 멜로물과 다른 점은 단순히 낭만적인 감정을 자극하기보다는 남녀가 만나서 어떻게 서로를 믿고 변해 가는가가 영화의 주된 갈등이자 결말이라는 점이다. 인디영화의 건강성이 들여다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contsmark10|뿐만 아니라 하틀리는 영화 곳곳에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을 삽입하여 관객들의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이를 통해 시선을 끈다. 어찌 보면 극전개상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에피소드들, 그 자체로는 극적 기능을 감안하기 어려운 소재들을 여기저기에 배치함으로써 긴장의 강약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contsmark11| 영화 ‘트러스트’에는 멋진 액션이나 화려한 장면도 없고, 유명한 스타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트러스트’는 사회적으로 일탈한 듯한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 우연히 만나서 사랑하고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아주 평범한 듯한 이야기구조를 가진 멜로드라마 같은 영화이다. 그러나 하틀리의 인디영화는 그만의 매력이 있고, 그만의 스타일이 돋보인다.
|contsmark12|제도권에 흡수된 상업영화가 가질 수 없는 인디영화만의 매력, 즉,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 부적응자들에 대한 신뢰와 희망, 그것이 바로 하틀리의 영화가 지닌 매력이자 사랑 받는 이유일 것이다.
|contsmark13|이승훈ebs 편성기획실 pd|contsmark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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