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여론에서 밀린 김재철의 ‘자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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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방송 결정 왜?…국장책임제 훼손, 단협 개정 ‘신호탄’

MBC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편이 불방 사태 1주일만인 24일 정상 방송된 것을 두고 “김재철 사장이 명분과 논리 싸움에서 모두 졌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즉 애초부터 김재철 사장에게 승산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왜 1주일 만에 방송 결정했나=김재철 사장 등 MBC 경영진은 지난 17일 ‘국토해양부가 청와대 행정관 2명이 포함된 4대강 비밀팀을 조직했다’는 〈PD수첩〉 방송 내용과 관련해 제작진에게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며 사전 시사를 요구했다. 이에 제작진이 “사전 검열”이라며 거부하자 방송 3시간을 앞두고 방송 보류를 결정했다.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에 따라 경영진이 사전 시사를 요청했는데 이를 거부했으므로 ‘사규 위반’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 김재철 MBC사장 ⓒPD저널
‘사장 등 경영진이 사전 시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사측의 주장은 즉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MBC는 특보 등을 통해 “각 사의 사장은 방송의 최고 책임자로 공정방송 실현의 책무를 진다”며 “방송의 최고 책임은 사장에게 있다”는 점을 거듭 밝혔다.

그러나 노조와 제작진 등은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이라며 반발했다. MBC 단체협약 공정방송협의회 운영규정은 “편성·보도·제작상의 실무책임과 권한은 관련 국장에게 있다”며 ‘국장책임제’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MBC 시사교양국 PD들은 지난 18일 성명을 통해 “프로그램 책임자인 PD수첩 프로듀서나 부장은 물론 상위책임자에 해당하는 시사교양국장 공히 방송이 나가는 것에 대해 하등의 이견이 없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이 일방적으로 방송 보류를 결정한 것은 사규를 정면으로 위반한 불법행위”라고 비판했다.

언론·시민사회단체와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4대강 사업’을 다룬 방송의 불방 사태가 오히려 정권에 부담만 가중시켰다는 해석도 제기됐다. 결국 사규와 단체협약 등을 앞세운 대의명분이나 국민적 여론, 정치권의 반응 등에서 모두 밀린 김재철 사장이 ‘순리적 판단’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김태현 〈PD수첩〉 책임PD는 “내부적으로는 명분이나 논리에서 뒤지고, 외부적으로는 정치권의 비판적인 분위기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PD수첩〉이 계속 해서 거론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태 마무리? 여진은 남았다=그러나 〈PD수첩〉의 방송 결정으로 모든 사태가 수습된 것은 아니다.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측이 ‘국장책임제’를 부정하거나 단체협약 개정을 시도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 MBC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9일 오전 MBC 여의도 방송센터 앞에서 'PD수첩' 불방 결정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PD저널
MBC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담당 본부장은 총괄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고 방송의 최고 책임은 사장에게 있다”는 점을 공공연히 강조하고 있다.

제작진이 ‘국장책임제’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사장이 참여하는 사전 시사를 거부해온 가운데, 24일 저녁 〈PD수첩〉 방송을 앞두고 김재철 사장이 끝내 시사를 진행한 것을 두고도 ‘사전 시사’ 및 ‘국장책임제 훼손’ 등의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연보흠 MBC노조 홍보국장은 “전례를 무시하고 단협을 왜곡 해석해 사문화 시키는 전략을 취한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첫 번째 포석”이라고 말했다. 연보흠 국장은 “김재철 사장이 임명됐을 때부터 〈PD수첩〉 손보기와 단체협약 무력화를 예상했는데, 그런 차원에서 계속 공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MBC노조는 경영진에 공정방송협의회 개최를 요구하는 한편, ‘단협 아전인수식 해석’ 자제와 〈PD수첩〉 불방과 같은 사태의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할 방침이다.

한편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재우)는 다음달 1일 이사회를 열어 〈PD수첩〉 불방 사태에 관한 경위와 경과보고 등을 받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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