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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프랑스=표광민 통신원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을 여행해 봤다면, 구걸하는 집시 여인들을 마주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회 하층민인 이들 집시들은 구걸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면서 살아가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프랑스 정부는 집시들의 불법거주지를 강제 철거하고 불법체류자는 추방하는 등 강력한 단속을 벌이는 중이다.

‘롬’이란 공식적 명칭이 있지만, 이들 집시는 유럽에서는 흔히 지탄, 치간, 보헤미안 등으로 불리고 있다.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이들 전체 인구는 적게는 600만에서 많게는 1300만 명으로 추정된다. 루마니아에 250만 명 정도가 거주하는 등 발칸 지역과 동유럽에 많이 살고 있다. 프랑스에도 35만~50만 명의 집시들이 있다고 한다.

▲ 프랑스 집시여인들의 모습.

롬이란 명칭을 쓰고 있고 많은 수가 루마니아에 살고 있지만, 인종족 측면에서 고대 로마 제국이나 루마니아와는 관계가 없다고 한다. 이들은 인도 북서부에서 이동해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집시라는 영어 명칭은 이들이 이집트를 거쳐 왔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그리스어에서 파생되었다는 설도 있다. 보헤미안이랑 명칭은, 중세시대 이들에게 보헤미아왕이 유럽여권을 준 사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집시 박해가 본격화된 것은 근대 이후였다. 우생학이 유행하던 20세기 초반, 서유럽 각국은 인종보호를 명분으로 집시들의 이동을 차단했다. 스위스에서는 1930년부터 정부가 집시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떼어내 집단 수용했었다. ‘유전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하는 집시들을 어려서부터 교육시킨다는 명분에서였다. 집시여성들을 대상으로 불임수술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런 조치들은 1972년이 되어서야 중단되었다.

물론 나치 독일에서의 상황이 가장 심각했다. 집시들은 인종적 순수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집단수용소에서 살해됐다. 나치에 의해 죽은 집시는 20만 명에 달한다.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유럽 전역에서 집시들은 말 그대로 학살당했다. 최근 유럽에서는 집시들의 범법행위가 외국인 혐오증을 부채질하고 있다. 2008년 5월, 나폴리에서 한 집시 소녀가 17개월 된 아기를 유괴하려던 사건이 있었다. 현장에서 동네 주민들에게 잡힌 이 소녀는 집단 린치를 당했다. 이후 십여일 간 나폴리 시민들이 집시 거주촌을 공격하고 불을 지르는 사태가 이어졌다. 당시 공권력은 주민들의 보복행위를 방조했다. 이후 주민들의 폭력과 경찰의 단속으로 많은 집시들이 이태리를 떠나게 되었다.

▲ 프랑스=표광민 통신원/ 프랑스 고등교육원(EPHE) 제 5분과 정치철학 박사과정

프랑스에서는 지난 달 말, 사르코지 대통령이 치안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1500여 명의 집시들이 퇴거당하거나 아예 국외로 추방됐다. 지난 11~12일 제네바에서 열린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프랑스 정부의 조치가 심각한 인종차별 행위라고 비판했다. 프랑스의 많은 인권 단체들도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조용하고 안전하며 소수인종을 차별하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구걸하는 자들을 마주치고, 소매치기 등 범죄를 당할 위험이 있지만 여러 인종과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프랑스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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