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또래 정서’ 실종…“청소년 눈높이 맞는 프로그램 없어”

〈사춘기〉〈공룡선생〉〈나〉〈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 청소년 드라마가 붐을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10대가 주인공이고, 실제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의 연기자들이 청소년들의 꿈과 사랑, 고민을 이야기하던 드라마. 드라마가 방송된 다음날이면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감상을 나누기 바빴다. TV가 만들어낸 학교생활에 대한 환상에 빠지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비슷한 또래의 주인공들이 처한 현실에 공감하며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90년대를 지나며 드라마 속 10대를 연기한 배우들은 점차 나이가 들었고, 현실 속 10대들도 자랐다. 10대들은 TV 안과 밖에서 함께 성장하며 20세기를 보냈다.

청소년 프로그램 안방극장서 ‘퇴출’

▲ 90년대 후반 방송된 MBC 청소년 드라마 '나' ⓒMBC
그런데 2000년대 들어 TV 속에서 ‘청소년’이란 이름이 사라져 가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학교〉〈반올림〉 등의 드라마가 청소년 드라마의 명맥을 이어갔지만 2~3년 전부터는 이 같은 흐름마저 뚝 끊겼다. 지난 2007년 SBS 〈달려라 고등어〉가 시청률 부진 등을 이유로 조기종영한데 이어 KBS도 제작비 압박을 못 이겨 〈최강 울엄마〉를 조기종영하면서 청소년 드라마는 사실상 안방극장에서 퇴출당했다. KBS 〈정글피쉬〉, MBC 〈나도 잘 모르지만〉 등이 특집극 형태로 간간이 선을 보였을 뿐이다.

같은 시기, TV에선 10대 아이돌이 가요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다수의 아이돌 그룹 평균 연령이 10대이고, 아예 10대만으로 꾸려진 팀들도 나왔다. 이제 우리의 청소년들은 TV에서 사라진 ‘청소년’이란 이름 대신 10대 아이돌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교복을 입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스타’들에게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은 사라지고 아이돌만 남아

요즘 TV에선 청소년을 위한 드라마도, 오락프로그램도, 교양프로그램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의 경우 특히 그렇다. 청소년 프로그램이라고 해봤자 〈도전 골든벨〉 같은 퀴즈나 학습 관련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물론 어느 드라마에나 청소년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드라마 속에서 딸, 아들 또는 동생 역할에 머무른다. 각자의 세계를 형성한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청소년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끔 〈꽃보다 남자〉와 같이 10대 시청자를 겨냥한 학원 로맨스물이 인기를 끌지만 드라마 속 주인공이 청소년으로 설정됐을 뿐 현실과는 동떨어진 판타지 세계다.

▲ '영웅호걸' 등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 중인 티아라의 지연(왼쪽)과 아이유도 현재 고등학생, 즉 청소년이다. ⓒSBS
예능 프로그램에도 역시 10대는 나온다. 최근 가요계를 주름잡는 아이돌에는 중·고등학생들이 다수 포함돼 있고, 심지어는 초등학생도 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오락프로그램에서 섹시댄스 대결을 벌이는 그들은 ‘청소년’이 아닌 그저 ‘아이돌’일 뿐이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청소년들이 마음 놓고 웃고 자신들의 고민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청소년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청소년들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무한도전〉 같은 버라이어티나 가요 프로그램, 그리고 드라마 등 대부분 성인들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자기 또래 친구들과 고민을 나누거나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KBS ‘정글피쉬2’ 방영…가능성 보일까

방송사 입장에서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7년 〈달려라 고등어〉와 〈최강 울엄마〉가 줄줄이 조기종영한데서 볼 수 있듯 제작비 압박과 시청률, 수익성 문제는 방송사들이 청소년 프로그램 제작을 기피하는 주된 원인이다. 입시 불안, 집단 따돌림 등 소재의 다양성 부족도 한계로 지적된다.

MBC 드라마국의 한 PD는 “청소년들의 눈높이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때문에 청소년 드라마라는 게 자칫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며 “미니시리즈 형태가 일반화된 현실에서 청소년용 드라마가 얼마만큼 수익을 낼 수 있을 지도 회사 입장에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 2000년대 초중반 방송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KBS 성장드라마 '반올림' ⓒKBS
이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올 초 방송된 KBS 〈공부의 신〉은 당초의 우려를 씻고 청소년 성장 드라마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 비록 본격 청소년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입시와 성적에 대한 청소년기의 고민을 비교적 진정성 있게 그려내 시청률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실제 청소년 연기자들을 내세워 새로운 얼굴을 발굴했다는 점은 또 다른 수확이었다.

이런 가운데 KBS가 오는 25일 8부작 청소년 드라마를 선보일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KBS는 지난 2007년 시험지 유출 사건 실화를 다뤄 미국 피버디상 등 각종 국제상을 휩쓸었던 〈정글피쉬〉를 8부작으로 새롭게 제작해 25일부터 방송한다.

〈정글피쉬2〉는 교내에서 발생한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요즘 청소년들이 지닌 일상의 고민들을 조명할 예정이다. 이번 〈정글피쉬2〉의 성공여부가 향후 청소년 드라마 제작에도 탄력을 줄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