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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태인 경제평론가

공정사회의 두 원칙

이명박 대통령이 5일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쏟아냈다. “이것(공정사회 기준)은...아마도 기득권자에게는 매우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이번 총리 이하 국무위원 임명 과정에서 공정 사회에 맞지 않는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에 책임이 전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다.”

공정 사회를 국정 지표로 내세운 뒤 총리와 장관 후보가 비위로 잇따라 낙마하고 급기야 최장수 장관이 딸을 특채한 사건으로 물러났으니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말대로 “공정사회”는 이명박 정부를 옥죄는 굴레가 될 법하다. 그러나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한발 더 나가는 결기를 보인 것이다. 말하자면 “솔선수범”이 공정사회 제1의 원칙이다.

▲ 한겨레 9월6일자 3면
특히 시장 안의 할머니들이 “나는 그래도 괜찮으니 더 어려운 사람을 보살펴 달라”고 했다는 감동적인 말을 전하며 “내 임기를 마칠 때까지 제일 바닥에 있는 분들 목소리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 더더욱 희망적이다. “상박하후”가 제2의 원칙이다.

물론 선거법 위반, 탈세,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등 온갖 비리 경력을 가진 대통령이 외치는 ‘공정사회’를 얼마나 믿을 수 있겠느냐고 묻겠지만 그래도 나는 믿고 싶다.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란다고 해도, 나는 바담풍 하지만 너는 바람풍하라고 해도, 남의 눈의 티는 보지만 자기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한다 해도, 그래도 믿고 싶다. 대통령에게 한표를 찍었을 저 시장 할머니들이 활짝 웃는 공정사회를 보고 싶다.

공정성(fairness)의 기준

나는 대통령이 이번만은 성공하기를 빈다. 그러려면 다른 무엇보다 먼저 혹시 ‘공정사회’가 과거의 정책기조와 모순되지 않는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내 과문 탓이겠지만 공정성이라는 개념은 학계에서도 확정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오로지 대통령을 위해 최근의 실험경제학/진화생물학 등에서 어느 정도 합의된 공정성의 개념을 소개하려 한다.

우선 확실한 것은 공정성이 경제학에서 말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와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실험경제학은 사람들은 이기적으로만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예컨대 최후통첩게임에서 사람들은 상대를 배려하고 공공재게임에서는 꽤 많은 액수를 기부하며 심지어 스스로 손해를 보면서도 이기적인 사람(무임승차자)을 처벌한다. 또 기대보다 많은 보수를 제의받은 사람은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선물게임). 사람들은 자기 이익 뿐 아니라 타인과의 공정한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페어나 보울스 같은 학자들은 사람들의 이런 성향을 ‘상호성’(reciprocity)라고 부른다. 각종 상호성은 인간이 협력하여 죄수의 딜레마나 공유지의 비극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근거가 된다. 바로 결론을 말하자면 정부는 자산/소득재분배와 보조금/벌금 등을 통해 ‘상박하후’를 실천하고 동시에 사람들이 스스로 협력하여 사회적 자본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 이 때 ‘솔선수범’이 아주 효과적이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분명 신뢰는 공정사회의 기본이다.

불행하게도 4대강은 생명을 파괴하는 데 재정을 쏟아 붓는 것이니 ‘상박하후’와는 반대의 방향이고, 747이나 비즈니스프렌들리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장려하니 사회적 자본의 형성과 또한 엇나간다. 한마디로 신뢰와 사회적 응집보다는 갈등을 유발하는 정책들이다.

▲ 정태인 경제평론가
하나 더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방/외교 분야에서는 애초부터 ‘상호주의’를 내세웠는데 반복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현재의 동북아 정세처럼 대결의 악무한이 계속되는 경우 먼저 선의(협력)를 내세워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즉 진정한 상호주의에 따르자면 지금 바로 인도적 지원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 공정사회를 이루려면 공정성/상호성 개념이 지시하는 화살표를 따라 가야 한다. 이를 보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거꾸로 간다면 시장 할머니들의 희망은 곧 절망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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