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여자’와 로맨스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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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여자’와 로맨스 드라마
[방송따져보기]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
  •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10.09.08 13: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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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
KBS〈성균관 스캔들〉
SBS〈미남이시네요〉

〈성균관 스캔들〉의 원작은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란 소설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상아탑 ‘성균관’을 배경으로 잘생긴 4명의 유생들과 그곳에 들어간 남장여자가 벌이는 로맨스를 그린 이야기로 동방신기의 믹키유천, 유아인, 송중기, 박민영 등 ‘잘 나가는’ 젊은 배우들과 김갑수와 안내상 같은 중견 연기자들이 모이며 화제가 되었다.

이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배경만 조선시대일 뿐 내용적으로는 일반적인 트렌디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200년 전 저자거리는 요즘의 대학가로 바꿔도 무방하고 삽입곡 또한 마찬가지. 고증보다는 캐릭터와 그들이 맺는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인상이 강하단 얘기다. 신입생 환영회의 풍경은 물론 ‘적립금’이란 단어가 등장하거나 시험장에서 유생들이 커닝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현대적이다.

▲ KBS〈성균관 스캔들〉

물론 아예 시대상황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당시 쓰이던 풍속을 어느 정도 반영해 자막으로 설명하는 시도도 있고, 정조 시대라는 배경에 맞게 해외 문물과 전통 가치가 충돌하는 갈등도 살짝 엿보이기도 한다. 기존에 조선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구시대의 가치관과 부딪치며 새로운 시대를 향한 젊은이들의 열망 또한 중요한 주제다.

그런데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남장여자’라는 소재다. 〈커피프린스 1호점〉부터 〈바람의 화원〉과 〈미남이시네요〉, 〈성균관 스캔들〉에 이르기까지 한국 드라마에서 ‘성역할 바꾸기’란 소재가 거부감 없이 수용된다는 인상은 젠더 문제에 대한 세대와 성별 취향이 어떻게 분화되는가에 대해 재미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야오이 만화(혹은 BL-Boy’s Love)나 팬픽, 하이틴 로맨스 소설의 감수성과 같은 소녀들의 하위문화가 주류 문화 산업과 결합하는 지점이 ‘시청률’이란 것도 의미심장하다.

▲ SBS〈미남이시네요〉

로맨스 드라마 시장이 특히 20대 여성들에게 특화되었다는 점에서 이렇게 ‘비주류적인 감수성의 주류 진입’은 현재 한국 드라마에 대한 완전히 다른 관점을 요구하는 것이다. 요컨대 드라마는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막강한 문화 산업이지만 그게 겨냥하고 있는 시장은 의외로 작다. 10대 시절 하위문화적 감수성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현재의 30대 여성들이 주요 타깃인 동시에 인터넷 판타지 소설과 팬픽,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10대 소녀들을 포섭한다는 점에서 이런 ‘남장 여자’란 소재의 유행은 지금 한국의 문화산업의 근간에 하위 장르가 굳건하게 자리 잡는 현상과 같은 맥락에서 보게 만든다. 2000년 이후 성공한 한국 영화 대부분이 장르물이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시사적인가.

여기서 중요한 건 이 하위문화적 감수성을 현실감 있게 설득하는 과정이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만화적 상황을 정돈된 연출로 구성했고 〈바람의 화원〉은 소재에 함몰되지 않은 정극 스타일로, 또한 〈미남이시네요〉는 로맨스 드라마의 장르적 규칙에 충실한 방법론으로 시청률을 올렸다. 〈성균관 스캔들〉은, 비록 초반이지만, 사극 특유의 구성과 동시대적인 감각이 스며든 연출로 그 뒤를 잇고 있다.

▲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

이때 궁금한 건, 또 기대하는 건 이런 문화적 경험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세대들이 나중에 향유하게 될 취향과 태도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의 세대들보다는 성역할에 대해 훨씬 더 유연한 사고가 가능할지 모른다. 그 점에서 TV와 같은 매스미디어가 내뿜는 하위문화의 감수성은 흥미롭다. 2008년과 2010년 사이, 이 짧은 기간 동안 TV에서 벌어진 일련의 독특한 현상들은 언젠가 한국 대중문화를 논할 때 중요한 단서로 자리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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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9-13 04:47:37
조금 뻔한감이 없지 않지만, 뻔한듯 톡톡튀는 이야기 캐릭터들, 옛날과 현대적 감성의
적절한 조화가 가능성이 아주 커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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