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 시청자 안전 위협하는 L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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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준상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케이블을 비롯한 유료방송을 시청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채널을 돌리면 나오는 게 ‘미드’다. 그렇게 미드는 유료방송에서 차고도 넘칠 만큼 이미 포화 상태다.

현 정권 차원에서 새로 도입하려는 종합편성채널에서 뭔가 새로운 걸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가 있다면 그 기대를 크게 낮추는 게 나을 듯싶다. 종편에서 국내 제작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상파방송(80%)과 달리 40%만 돼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외국 프로그램으로 채워도 그만이다. 프로그램 다양성을 높이기보다는, 종편의 등장에 따른 외국 프로그램 구입 경쟁으로 외국 프로그램의 저작권료를 크게 높일 위험성만 커진다고 보는 게 정확할 듯싶다. 혹시 해외 프로그램 수입 경로가 다변화할지도 모를 일이나, 미드만큼 국내 시청자의 흥미와 재미를 만족시킬 만한 콘텐츠를 찾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종편의 자본금 규모를 적어도 6000억원 이상으로 할 경우, 뭔가 새로운 걸 볼 확률은 그만큼 높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방송통신위는 종편 자본금 규모는 1년 운영비 수준에 불과한 3000억원으로 하는 방안을 내놓았고, 이마저도 특정 신문들을 선정하기 위해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종편의 등장으로 시청자들은 그나마 재미있게 시청해오던 국내 제작 프로그램들이 줄어드는 황당한 풍경을 보는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이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중소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의 광고수입의 상당 부분이 종편으로 쏠려 프로그램 제작 기반 자체가 흔들릴 게 불 보듯 분명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제작 재원의 압박을 받기는 지상파방송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지상파방송은 유료방송에 진출해 있는 계열PP들의 광고수입의 증가를 통해 자체 방송광고 수입이 감소하는 것을 일정하게 메우고 있다. 종편이 도입되면 지상파방송의 계열PP들의 광고수입도 상당히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프로그램 제작 재원의 압박에 시달리는 지상파방송들은 프로그램 중간 중간에 광고를 끼워 넣는 ‘중간광고’ 허용을 강하게 요구하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시청자에겐 ‘중간광고’ 시청이라는 새로운 불편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광고수입 증가를 꾀하기 위해 저널리즘의 막대기를 광고주 친화적으로 왕창 구부리는, 그래서 저널리즘의 질이 악화하는 모습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종편의 등장으로 제대로 된 방송보도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한다면, 이 역시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종편 달라고 애원하는 ‘조중동’을 포함해 대부분의 준비 사업자들이 정권에 대한 견제와 감시, 정부 정책에 대한 검증과 감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신문들이다. 오죽했으면 보수 성향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까지 이들 신문을 향해 ‘종편의 노예’가 됐다고 일갈했을 정도다.

게다가 ‘조중동’이 종이신문 시장의 절대 강자라는 사정을 감안하면, 종편의 등장은 한국사회 ‘의견 다양성’의 심각한 침식으로, 그리고 여론 과점의 심화로 이어질 위험성만 안고 있다고 해야 한다. 이를 감수하는 대가로, 아니, 이를 감수시키는 대가로 시청자에게는 종편과 ‘조중동’의 결합판매를 통해 이전보다 낮아진 수준의 ‘시청료+구독료’ 서비스를 제공될 확률이 높다. 의견 다양성 축소와 여론 과점의 공고화라는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을 깨닫지 못하도록 만드는 ‘최면제’가 뿌려진다는 얘기다.

한 개든 두 개 이상이든 종편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도입되는 한, 국내 콘텐츠 산업은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지상파방송을 장악하기 이전에는 대항마를 키우겠다는 차원에서, 장악한 이후에는 그 필요성이 반감됐음에도 정권의 유지에 혁혁한 기여를 해온 특정 신문들에 보은하고 정권 재창출에 동원하겠다는 차원에서 현 정권이 도입하는 ‘나쁜 정치 논리의 집대성’이 바로 종편이기 때문이다.

▲ 조준상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언론연대
이는 애초 외주전문채널을 비롯해 국내 외주제작산업의 육성과 밀접히 연결돼 있는 종편 개념을 완전히 뒤틀어버린 것이다. 지금의 종편은 시청자들에게 안전하지 않은 ‘유전자변형생물체’(LMO)에 해당한다. 국내 콘텐츠 산업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파괴시켜, 결국에는 암흑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LMO, 그것이 바로 현 정권 아래에서 종합편성채널 도입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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