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폐지되어야 할 것은 남성적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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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따져보기] 윤정주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지난 8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걸그룹을 출연시켜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고 이를 본 남성 출연자들이 과도하게 환호하고 저속한 표현과 고성을 동반한 반말 등을 했다는 이유로 〈세바퀴〉, 〈꽃다발〉(이상 MBC) 및 〈놀라운 대회 스타킹〉(SBS) 등 지상파 오락프로그램에 ‘경고’를 주었다.

그러나 오락프로그램의 선정성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선정성이 아니라 선정성 뒤에 있는 ‘남성적인 시선’이다. ‘남성적 시선’은 말 그대로 남성의 관점을 말한다. 따라서 남성적 시선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노골적이든 그렇지 않든 여성들이 성적 대상화가 될 수밖에 없다. MBC의 〈꽃다발〉이 바로 그런 프로그램이다.

청춘버라이어티를 표방하며 지난 7월 25일에 처음 방송된 〈꽃다발〉은 걸스데이, 포미닛, 시크릿, LPG 등 걸그룹들을 출연시켜 이들 중 한 팀을 ‘국민돌’로 선정하여 MBC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걸그룹들은 신인이기 때문에 한번이라도 방송 출연을 더 해서 자신들을 알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따라서 프로그램 구조상 이들은 춤과 노래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시키는 것은 마다하지 않고 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남성적 시선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다.

▲ MBC <꽃다발> ⓒMBC
실제로 이 프로그램은 첫 회부터 지속적으로 걸그룹들에게 자신들을 알릴 수 있도록 춤을 추게 하고 이를 남성 진행자와 남성 출연자들에게 평가를 시켰다. 이 속에서 남성 MC(김용만, 정형돈, 신정환)들은 포미닛의 현아와 시크릿의 징거에게 누가 더 골반댄스를 잘 추는지 경쟁을 부추겼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춤을 추는 이들을 보고 괴성을 지르면서 환호하였다. 또한 추억의 수학여행이라는 설정을 하고 정형돈, 홍록기, 성대현, 지오 등의 남성 심사위원들 앞에서 장기자랑으로 춤을 추게 하였는데 여기서도 이들 남성 심사위원들이 걸그룹과 함께 춤을 추고 괴성을 지르며 ‘장난이 아니다’, ‘짜릿하다’ 등의 말을 하는 것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올해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어린이 성폭행 사건으로 깊은 충격에 빠졌었다. 이러한 어린이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에는 어린 소녀를 성적 대상화 시키는 우리 사회의 남성 중심적인 시선이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방송의 책임 또한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오락 프로그램에서 걸그룹들에게 섹시댄스를 추게 하고 이에 열광하는 ‘삼촌’들을 등장 시키는 것, 바로 이러한 시선들이 어린 여성들에 대한 성적 대상화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MBC는 가을 개편을 앞두고 〈후 플러스〉와 〈김혜수의 W〉를 폐지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폐지되어야 할 프로그램은 이렇듯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남성적 시선이 가득한 프로그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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