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의 가능성과 ‘피아노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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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의 가능성과 ‘피아노의 논리’
[글로벌] 독일=서명준 통신원
  • 독일=서명준 통신원
  • 승인 2010.09.1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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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살인 아들 녀석은 피아노를 좋아한다. 팔꿈치와 손바닥으로 가장 낮은 음의 건반들을 한꺼번에 눌러서 둔중하게 울리는 소음(?!)을 즐긴다. 오늘 발달된 기술의 사회적 효과에 대한 인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피아노가 소음을 내고, 자동차는 사고를 내고, 무기는 살생을 한다. 물론 현실에서 소음을 내는 것은 피아노 자체가 아니다. 아들 녀석이 소음을 만들지 않으면 피아노는 정말 잠잠해진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뉴미디어기술에 대한 인식의 논리도 이와 같다. 커뮤니케이션 국가통제를 무력화시키는 민주주의 기능이 일방적으로 찬양되거나, 무비판적인 소비자가 대량 생산될 것이라는 극단적 부정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지 따져보지 않고 기술발달의 문제를 이렇게 단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이는 피아노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네트워크에서 개인의 내밀한 일상을 표현한다고 해서 소셜미디어가 노출증이나 관음증을 일으킨다는 시각도 이런 ‘피아노의 논리’와 같은 것이다.

오히려 최근 이용자들이 사생활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연구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소셜미디어의 개인정보들이 어디로 어떻게 떠다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소극적인 자세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출증이나 관음증에 대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할지 모른다. 소셜미디어는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욕구와 오늘의 내밀성에 대한 욕구가 변증법적 통일에 이르는 문화적 현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네트워크 세계의 고유한 ‘에티켓’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그것은 길거리나 골방이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클럽문화에 더 가깝다.

최근 시장조사기관들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에 이용요금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25세 이하 이용자는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 시장경제 메커니즘을 거부하는 셈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이다. 페이스북에서는 이미 특정 소비구매집단을 타깃으로 상품광고가 가능하고, 급격한 광고 증대도 예상된다. 망중립성 원칙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이동통신사들은 이미 네트워크의 이익 증대에 골몰하고 있다.

한편 국가정보기관에게 소셜미디어는 정말 대박일지 모른다. 적은 요원으로 오피니언 리더 등 사회관계망 감시가 가능해져 감시업무가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독일기업 지멘스가 2년 전 개발한 정보기관용 소프트웨어는 시간당 2천만건의 통화데이터 수색이 가능하다고 한다.

▲ 독일=서명준 통신원/독일 베를린자유대 언론학 박사

하지만 이런 시민감시뿐만 아니라 시민의 자율적 조직화도 가능해졌다. 최근 미국 승무원 스티븐 슬레이터의 사례는 페이스북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새로운 정치행위의 플랫폼으로 가능성이 보인다. 그러나 슬레이터의 사례도 고전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것을 보면 소셜미디어가 고전미디어를 축출한다는 테제는 잠시 미뤄야 할지 모른다. 올해 독일 공영방송 ARD의 조사결과도 블로그, 트위터 등에 대한 관심이 다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소셜미디어의 미래에는 다양한 가능성과 불확정성이 잠재하고 있다. 아들 녀석의 피아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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