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매형 폐지 촬영 중 ‘W’ 폐지 소식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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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팔매형 폐지 촬영 중 ‘W’ 폐지 소식을 듣다
[기고] 이채훈 MBC ‘김혜수의 W’ PD
  • 이채훈 MBC ‘김혜수의 W’ PD
  • 승인 2010.09.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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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둔 지난 20일, 노르웨이로 출발했다. 간통혐의로 돌팔매형을 선고받은 사키네 아슈티아니(43)는 이란 북부 타브리즈의 감옥에 있었고,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국제여론에 호소한 아들 사자드(22)는 이란 내에 은신 중이었다. 사건 핵심 당사자는 만날 수 없었다. 대신, 그녀의 변호인이었던 모스타파에이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는 이란 법에 따라 그녀를 변호했을 뿐인데 당국의 탄압을 받았고, 끝내 이를 피해 노르웨이로 망명한 것이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추웠다. 긴팔을 꺼내 입긴 했지만 오슬오슬 추위가 몸속에 스며들었다. 비행기에서 밥을 안 주는 바람에 허기가 느껴졌다. 노르웨이의 물가는 엄청 비싸다. 저녁 한 끼에 380크로네. 우리 돈으로 거의 8만원이다. 거리를 산책하고 돌아오니, 감기 기운이 느껴졌다.

▲ 서울신문 9월8일자 17면.
이번 취재는 이란에 직접 가는 것이 불가능했으므로 이란 현지인에게 촬영을 부탁했고, 반대여론이 가장 강한 프랑스 내 취재는 파리에 사는 이지용 PD가 맡기로 했다. 당사자와 가장 가까웠던 모스타파에이 변호사는 내가 직접 만나기로 했다. 동시다발 입체 취재인 셈이었다. 프랑스까지 직접 취재할 수도 있었으나 경험 많은 이지용 PD가 믿을 만 했고, 일정하게 제작비 절감 효과도 있었다. 노르웨이까지 현지 프로덕션에 맡기면 100만원 남짓 추가 절감할 수 있었다. 하루 촬영하러 거기까지 가야 하나 고민도 했다. 그러나 워낙 중요한 인터뷰이라 남에게 맡기기 어렵다고 판단, 직접 취재했다.

호텔에 돌아와서 프랑스의 이지용, 이란의 0000에게 전화, 취재 상황을 확인했다. 돌팔매형의 비인간성을 국제여론에 호소한 프랑스의 앙리 레비를 인터뷰하기로 돼 있는데 아직 시간을 콘펌 안 해줘서 애를 태운단다. 그 분의 인터뷰도 해야 하고, 아들 사자드의 연락처를 받아서 녹취를 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이란 취재는 그럭저럭 진행되고 있었다. 돌팔매형 목격자도 인터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가이드 이민아씨를 재촉해서 일찍 거리로 나왔다. 돌팔매형에 대한 시민 인터뷰를 땄다. “지금 시대에 어떻게 그런 일이?” “너무 잔인하고 폭압적이다” “여자에게만 가혹한 거 아니냐” 등등 예상했던 답변들이 나왔다. 무슬림 거주 지역에 가서 인터뷰를 했다. “이란에서 자행되는 돌팔매형은 쿠란의 본래 뜻에도 어긋난다”는 답변을 들었다. 돌팔매형에 찬성한다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불공정 방송인가?

14살 때 노르웨이로 건너와 이란 인권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마흐모드씨를 인터뷰했다. 그는 모스타파에이가 노르웨이에 들어왔을 때 곁에서 도와주기도 했다. 돌팔매형의 잔혹성, 선고와 집행 과정에서 드러나는 악랄한 여성 차별, 그리고 이란 내 전반적인 인권 상황에 대해 얘기했다. 예컨대 돌팔매형을 기다리는 14명 중 여자가 11명, 남자가 3명이다. 조사와 선고에서부터 차별이 역력하다. 집행할 때 남자는 허리까지, 여자는 가슴까지 파묻는다.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도망가면 살려준다. 남자는 간혹 탈출에 성공한다. 여자는 탈출하는 게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무슨 이따위 차별이 다 있는가. 마흐모드씨는 국제 여론의 압력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오후 3시쯤 오슬로 시내의 콘티넨털 호텔에서 모스타파에이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나중에 그를 찾아 노르웨이로 온 부인 페레슈테와 딸 파르미다도 함께 있었다. 그들은 우리 취재를 기꺼이 반겨주었다. 부인은 영어가 능통해서 남편의 통역 노릇을 해 주었다. 8살짜리 딸은 과자를 취재진에게 일일이 나눠주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다. 노르웨이 일간지 기자들과 호주 국제시사프로 PD 얄다 하킴이 함께 취재했다. 일단 탈출 이유, 탈출 경위, 노르웨이 정착 문제 등을 간략히 물었다. 닷새를 걸어서 터키로 갔고, 탈진한 뒤 말등에 올라타서 이동했고, 터키 당국이 이스탄불행 비행기를 내주었고, 거기서 6일 동안 구금돼서 조사를 받았고, 이란으로 송환될 위기 끝에 마침내 노르웨이 외무부 관계자와 UN 직원이 와서 망명을 허용했다고 한다.

이란 당국은 모스타파에이를 침묵시키기 위해 아내를 구금했다고 한다. 그가 탈출하자 이란 당국은 더 이상 아내를 구금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 두 주일 만에 풀어주었고, 아내는 어린 딸과 함께 즉시 노르웨이를 향했다. 이들의 가족 상봉은 노르웨이에서 떠들썩한 화제가 됐다. 동영상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딸 아이에게 “아빠가 자랑스럽냐?” 물었더니, 대답을 안 하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다. 아빠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린단다. 미안하다고 열 번쯤 말하고 달랬더니 방긋 웃는다.

비가 내렸다. 오슬로 근교 드라멘(Drammen)시에 있는 그의 임시 거처로 옮겼다. 차 안에서도 인터뷰가 이어졌다. 아프간 출신의 호주 PD 얄다 - 젊은 처녀가 6mm 카메라 들고 혼자 취재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우리 <W>팀의 이선미다 - 는 이틀 전부터 모스타파에이를 취재하고 있었는데, 내가 질문을 잘 하도록 옆에서 힌트를 주기도 했다.

▲ MBC '김혜수의 W' ⓒMBC
부인은 남편이 “살아있는 이란의 목소리”라고 했다. 이란 내에서 할 수 없었던 얘기들을 자유언론의 나라 노르웨이에서는 맘껏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란 당국이 사키네에 대한 돌팔매형을 집행하지 못한 채 주춤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의 압력 때문이며, 지금 서방 언론들의 보도가 넘쳐나고 있지만 여론이 잠잠해지면 언제든지 돌팔매형을 집행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핵문제로 이란과 대치해 온 미국 등 서방 국가의 언론보다는 ‘중립적’인, ‘제3자’인 아시아권 언론이 보도하면 그만큼 더 설득력이 있을 거라고 했다. 물론 한국도 이란 경제제재에 발을 담궜기 때문에 서방 국가와 별로 다를 게 없지만, 아무튼 그들에게 <W>팀과의 인터뷰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집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모스타파에이는 한국 외무장관을 만나게 해 달라고 나에게 간청했다. 알아보겠다고 대답했다. “외무장관이 그릇된 처신(misbehaviour)으로 사임했다, 새 장관이 임명되면 연락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이란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보다, 언론 자유가 보장된 노르웨이에서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세계 여론에 이란의 인권상황을 알리고 압력을 가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행보는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생계문제, 아이 교육문제 등 생존을 위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국제 여론이 시들해 지면 무력감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명함 케이스를 기념품으로 주면서 “이 케이스를 각국 대통령과 외무장관 명함으로 가득 채우기 바란다”고 진담 반 농담 반 덕담을 건넸다.

이란 음식 만들어 먹는 장면까지, 모스타파에이 가족 스토리를 충분히 촬영하고 오슬로에 돌아오니 9시. 프랑스의 앙리 레비는 인터뷰를 기어이 펑크 냈단다. 수요일쯤 다시 연락 주겠다나? 이지용 PD에게 “너무 안달하며 매달리지 말라”고 했다. 인터뷰 성사 여부보다, 한 여인의 무고한 생명을 살리고 야만적인 돌팔매형을 폐지하기 위해 힘을 합치자는 건데, 약속을 경시하는 앙리 레비가 괘씸했다. 하지만 어쩌랴. 가능한 범위 내에서 편집하는 수밖에.

▲ 이채훈 MBC〈김혜수의 W〉PD
프랑스 이지용은 앙리레비 대신 인권단체 ‘Ni Pute Ni Soumise’ (창녀도 노예도 아닌)의 회장 인터뷰를 일단 했다. 그녀 역시 한국 언론을 환영하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국제 여론에 호소하는 것 이외에는 돌팔매 처형을 멈출 수단이 없다는 게 공통된 인식이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 취재진에게 여론 확산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W>라는 프로그램이 국제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 있는 분들에게는 몹시 소중한 프로그램이구나, 실감되었다.

편성전략회의에서 <W> 폐지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노르웨이 취재 중에 들었다. 유엔 사무총장을 낳은 나라, G-20 정상회담 주최국, 이 모든 게 공허한 메아리로 느껴졌다. <W>가 폐지되면 이것이 마지막 취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돌팔매형을 앞두고 있는 비운의 여인 사키네, 엄마를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아들 사자드, 이들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는 모스타파에이 가족, 그리고 세계 각국 인권 운동가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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