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를 위한 영화 읽기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상태바
PD를 위한 영화 읽기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공포로 본 미국사회의 억압과 갈등
  • 승인 2001.06.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ntsmark0|애타게 기다리던 빗줄기가 시원하게 내리고 나더니, 장마 밑인지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가 사람들을 짜증나게 한다. 이런 여름에 대우(?)해 주지 않으면 또 섭섭한 것이 공포영화다.
|contsmark1|사람들은 공포영화를 보며 짜릿한 전율을 느끼고 그 덕에 잠시나마 더위와 짜증을 잊을 수 있을테니까. 그런데 난 생래적으로 공포영화를 보면 무섭기는커녕 좀 짜증이 난다. 괜시리 장난 같고, 뻔한 걸 무섭게 만들려고 쓸데없는 장치들을 여기저기 배치해 둬서, 보다 보면 급기야 짜증이 나기까지 했었으니까.
|contsmark2|그런데, 공포영화에 대한 이런 생각을 바꾼 영화가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다. 컬트영화 목록에 거의 빠짐없이 들어가는 이 영화는 일명 ‘좀비영화’의 원조라고 불린다. 좀비(zombie)의 사전적 의미는 알다시피 ‘마법으로 되살아 난 시체’라는 뜻이다.
|contsmark3|1968년에 흑백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엔 이런 좀비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주인공들을 괴롭힌다. 그 좀비들 때문에 주인공들은 하나씩 죽어가고, 고립된 공간에서 좀비들을 막으려고 갖은 애를 쓴다.
|contsmark4|하지만 그 좀비들은 내가 보기엔 드라큐라만큼 음산하지도 않고, 살인마들처럼 위협적이지도 않으며, 우리 나라 처녀귀신들만큼 섬뜩하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선 좀비가 등장할 때가 오히려 가장 우스꽝스럽다. 게다가 더욱 웃기는 것은 이 좀비에게 당한 사람은 좀비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처참하게 살해한다는 설정이다.(좀비에게 당한 딸은 부모들을 죽이고, 역시 좀비로 변한 오빠는 동생을 죽인다)
|contsmark5|이 영화는 탄탄한 이야기구조를 가진 것도 아니고, 감독의 연출력이나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난 것도 아니다. 별로 무섭지도 않고, 그럴듯한 설정이나 상황이 제시되지도 않는다(영화 속에선 좀비의 탄생을 위성의 폭발로 생긴 방사는 때문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개봉 당시 미국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또 이후에 수없이 만들어진 좀비시리즈의 원조가 된 컬트무비라니.
|contsmark6|하지만 이 영화가 탄생한 60년대 말 미국의 상황은 이 영화를 컬트로 만들기에 충분했었다. 역설적이지만, 당시의 미국의 현실사회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좀비들이 대거 등장했던 시기였고, 그 때문에 이런 좀비영화가 나왔으며, 이 영화는 컬트현상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contsmark7|즉,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는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던 억압된 긴장과 갈등, 그리고 과거 시대의 유물로 표상되는 구조화된 가부장적 관계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contsmark8|감독 조지 로메로는 영화 곳곳에서 60년대 미국 사회의 보수적인 지배문화를 상징하고 은유하며, 비판한다. 그리고 그런 지배문화에 도전하는 세력들의 발호로 야기된 가치관의 혼란을 살아난 시체, 좀비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한 발 더 나아가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contsmark9|첫 장면부터 감독은 미국사회에 대해 비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묘지에 걸린 성조기의 모습은 미국사회를 묘지에 비유하는 감독의 의도된 컷트이다. 그리고 부모를 죽이는 딸, 여동생을 죽이는 오빠, 결국 주인공 모두가 죽고 흑인이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는 설정 등은 미국의 보수적인 가부장적 가치관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가족관계의 붕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contsmark10|또한 마지막에 날이 밝아오면서 좀비 사냥꾼들이 좀비들을 죽이지만, 유일한 생존자인 흑인 벤 마저 좀비로 오인해 죽인다는 결말은 너무나 말도 안되게 빨갱이 사냥꾼들에게 살해당한 50년대 이후 미국의 매카시즘 광기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즉, 집단적 광기가 불러 온 개인의 희생을 감독은 좀비의 폭력보다 더 두렵고 공포스러운 좀비사냥꾼들의 모습을 통해 상징화한 것이다.
|contsmark11|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벤의 죽음을 암시하는 스틸사진과 암울한 음악을 사용하여 미래에 대한 부정적 시선과 불신감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바로 이런 점들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받는 컬트영화, 그리고 모던 호러영화의 출발점으로 인정하게 한 것이다.
|contsmark12|나 역시 이전엔 알지 못했던 공포영화의 사회비판적 혹은 전복적 성향과 기능을, 이 한 편의 웃기는 공포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덕분에 알게 되었고 때문에 나의 컬트영화목록에서 빠질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contsmark13|이승훈 ebs 편성실 편성운영팀 pd|contsmark1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