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장 말년 상황은 우리에게 보장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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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해고, 그 이후…이근행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장

‘이근행 위원장 해고 124일째’

지난 8일, 인터뷰를 위해 여의도 MBC 방송센터 1층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위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함께 적힌 ‘MBC 사수 투쟁 243일째’라는 구호도 선명하다.

지난 봄 39일간의 MBC노조 ‘불법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이근행 위원장이 해고된 지 만 4개월이 지났다. 공정방송협의회를 비롯해 MBC노조 위원장으로서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만, 어쨌든 그는 ‘해직자’다. 이명박 정권 들어 해고된 8명의 언론인 중 한 명인 것이다.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위원장은 “해고됐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고 말했다. 매일 출근도 하고 있고, 조합원 구제에 따라 급여도 받고 있으니 가족들도 실감을 하지 못한단다. 해고 이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해고 무효 소송이나 복직을 위한 투쟁도 아직까진 계획에 없다. 그는 “정당한 싸움의 과정에서 조합 대표자가 해고된 상황인 만큼, 빠른 시일 내에 해소돼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서둘러 복직을 위한 싸움을 전개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다시 싸운다면 MBC를 망가뜨리고 MBC를 장악하려고 하는 새로운 시도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어야 한다. 해고가 작은 사안이어서가 아니라, 사건의 본말이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한다는 측면에서 해고를 전면에 내세우진 않을 것이다. 가능하면 빠른 시간 안에 우리 힘으로 회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 이근행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장 ⓒPD저널
비단 해고 문제를 이슈로 내세우지 않더라도, 최근 MBC 노사 관계는 충돌 직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파업 이후 ‘보복인사’ 논란부터 최근 〈김혜수의 W〉, 〈후 플러스〉 폐지 등 개편 후유증을 겪으면서 MBC 내부는 소리 없이 들끓는 중이다. 이근행 위원장은 “김재철 사장이 전횡을 일삼으면서 위험한 신호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재철 사장은 자신이 전제자인양 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사 결정이 상당히 자의적이고 즉흥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자신의 감이라든가 말 한 마디에 따라 일을 처리하며 공조직을 죽여 놨다. 이처럼 구성원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밀어붙이는 상황들이 자주 발생하면서 조합의 긴장도나 사측과의 갈등 소지 등 내적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압력이 증가하다 보면 다시 노사 간의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노사 갈등과 대립. 그것이야 말로 김재철 사장이나 그 ‘배후’가 의도하는 것이라고 이 위원장은 지적했다. 그는 “김재철 사장이 노조와 대립하고 구성원들을 무시하며 일방적으로 마구 일을 벌이는 것들이 우리가 보기엔 MBC를 죽이고 파괴하는 일이지만, 방송문화진흥회나 배후의 정권으로부터 격려를 받는 게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사장이 MBC 구성원들과 똘똘 뭉쳐서 경쟁력을 키우고 뉴스가 살아나고 시사프로그램이 살아나는 상황보다는, 노조와 싸우고 구성원들과 갈등하면서 못 되는 게 정권 측면에선 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재철 사장의 방식이 연임의 근거로 작용할 수도 있다. 김재철 사장도 자기에게 유리하니까 일방통행 막무가내 식 결정들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일련의 상황들은 MBC 내부의 긴장과 갈등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일촉즉발의 상황. 이 위원장은 “극단적으로 노사 간의 충돌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며 “지금은 조합의 역량을 추스르고 에너지를 축적해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근행 위원장을 비롯해 8기 MBC노조 집행부의 임기는 이제 4개월 여 남았다. 하지만 임단협을 시작으로 내년 2월 차기 사장 선임까지 남은 일정들도 만만치 않다. 이 위원장은 “말잔등에서 내린 날이 없었다”고 담담히 말한다. 그러면서 “병장 말년 상황은 우리에게 보장돼 있지 않다”며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전투 상황일 것이다. 끝까지 싸우고 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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