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론]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MBC 가을 개편에 맞춰 국제 시사프로그램 <김혜수의 W>가 폐지되고 예능 프로그램인 <위대한 탄생>이 11월 5일부터 방송된다. 이번 개편에 시사 프로그램인 <후 플러스>도 동반 폐지되니 국내외 시사 프로그램의 양 날개가 꺾인 셈이다.

지난 7월에 영화배우 김혜수를 진행자로 영입해 새 단장을 하고 시청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호감을 받았던 이 프로그램이 돌연 폐지를 당했으니, 당사자인 김혜수도 황당할뿐더러, 국제 시사프로그램의 국내 제작을 자랑스러워했던 많은 시청자들이 당한 배신감은 이만 저만한 것이 아니었을 거다.

▲ MBC '김혜수의 W' ⓒMBC
더욱이 <김혜수의 W>를 대체하는 프로그램이 <위대한 탄생>이라는 스타 발굴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게 씁쓸하다. 한국 최고의 여배우 중의 한명인 톱스타 김혜수를 4개월 만에 낙마시킨 <위대한 탄생>이 스타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게 아이러니하지 않나? 결국 예능이 시사를 죽였다는 말로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내가 오래 동안 보아온 MBC의 방송 차별화 전략은 시사와 예능의 균형감을 고수하는 것이었다. 시청률을 염두에 두고, 일반 대중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는 프로그램들은 확실하게 그렇게 제작하고, 방송의 공영성과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프로그램들은 시청률과 외압에 관계없이 그대로 밀고 나간다는 이중전략 말이다.

MBC가 오락과 재미를 위주로 하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박이 나면서도 민영방송 SBS에 비해 그다지 많은 욕을 먹지 않았던 것은 바로 시사프로그램이라는 다른 균형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MBC가 많은 시사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도 KBS 1TV와 다른 기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탁월한 예능프로그램 때문이었다. <놀러와>, <무한도전>, <황금어장>의 뒤를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 <김혜수의 W>가 받쳐주고 있다는 걸 왜 모를까?

그런데 이번 <김혜수의 W>가 폐지되면서 시사와 예능의 균형추가 무너진 느낌이다. 이른바 MBC라는 방송생태계와 시청률 먹이사슬의 구조가 깨져버린 것이다.

앞으로 방송될 <위대한 탄생>이 <김혜수의 W>보다 시청률이 더 나올 수는 있겠지만, MBC가 고수해 온 브랜드 가치나 정체성에 흠집이 생겼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볼 때 악수일 가능성이 높다.

MBC가 제작한 <스타예감>(1994), <목표달성 토요일 악동클럽>(2002), <쇼바이벌>(2007)과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례를 비교해보면 <위대한 탄생> 역시 요즘 유행하는 스타 발굴 프로그램의 뒷물을 타는 ‘중간 계투’ 수준의 단명 프로그램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금요일 밤 12시 시사프로그램을 대체하는 스타 발굴 예능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을씨년스럽다.

요즘 한국 대중음악과 방송은 ‘아이돌’과 ‘아이돌 아닌 것’으로 구분된다. 예능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고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생방송 음악프로그램의 한 주 출연진의 80%가 아이돌이고, 드라마의 젊은 남자 주인공의 대부분도 아이돌 그룹 출신들이다.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 영국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 프랑스의 <스타 아카데미>의 한국형 포맷 프로그램인 <슈퍼스타 K>의 시청률 돌풍 뒤에 감추어진 것은 바로 주류 연예제작 시스템이 깔아 놓은 ‘아이돌 신화’이다. <위대한 탄생>이 일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스타 발굴 프로그램을 표방한다하지만 <슈퍼스타 K>처럼 주목받을만한 예상 출연진들은 모두 연예계 데뷔를 목표로 하는 아이돌 지망생들 일거다.

한국의 방송은 아이돌을 신화화, 우상화한다는 점에서 ‘아이돌의 아이돌’이다. 방송국 자체가 아이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혹시나 SM과 JYP처럼 아이돌 대형 연예 제작사를 꿈꾸는 것은 아닌가?

<김혜수의 W>는 시사와 교양 그리고 예능의 경계에서 MBC가 선택할 수 있는 지혜롭고, 아름다운 프로그램이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프로그램이지만, <위대한 탄생>이 <김혜수의 W>의 희생으로 탄생했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시사 대 예능‘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아닌 MBC 방송 편성의 기본 철학이 흔들린 것 같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개그맨의 요즘 유행어로 말하자면 아이돌 할 거 다하고, 예능할 거 다하면 시사는 누가 키우냔 말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