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vs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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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vs 김일성
[PD의 눈] 이채훈 MBC 〈김혜수의 W〉 PD
  • PD저널
  • 승인 2010.10.2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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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의 ‘3대 세습’에 대한 시각차로 지난 주 일부 언론과 정치권 사이에 설전이 오간 모양이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김일성’이다. ‘전근대적 세습’이든 ‘그들 나름의 권력 이양’이든, 모두 김일성이 ‘영생불멸’ ‘무오류’의 절대자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김일성’에 대한 양측의 시각차를 좁히지 않은 채 갑자기 통일이 될 경우, ‘톨레랑스’가 부족한 남쪽의 천민자본주의도 대재앙의 뿌리가 될 수 있지만, 남과 북 사람들은 ‘수령’에 대한 극단적인 인식차 때문에 만나는 족족 주먹다짐을 벌이게 될 것이다. 이런 통일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들이 ‘우리 식대로 살자’는데 간섭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문제는 ‘우상화’가 ‘경제 마비’와 쌍생아라는 점이다. 전쟁 이후 북측의 역사를 보면,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수령’의 절대 권력이 강화되어 왔다. 먹고 사는 게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수령’에 대한 더욱 큰 신앙으로며 위기를 넘겼다. 대규모 기아사태로 ‘고난의 행군’과 ‘고난의 구보’가 이어진 90년대, 북측 주민들에게 이 ‘신앙’이 없었다면 체제가 무너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북의 모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대를 이어 충성하는 건 아니며, 폭력으로 주민을 침묵케 하는 기제가 존재한다는 증거들이 이미 나왔다. 북측이 지향하는 가치와 실제 현실 사이의 괴리가 심화되면 언제든 파국이 올 수도 있으며, 우리는 이에 대비해야만 한다. 북측에서 하느님이 되어 있는 김일성은 남측 주류에서는 ‘최악의 전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차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김일성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야 하고, ‘인간’으로서 일제시대, 해방정국, 한국전쟁, 전후복구 시기 북측 주민들을 이끈 공과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가 ‘최악의 전범’인지 여부도 물론 엄정히 가려야 한다. 

이 일을 해낼 능력과 책임이 누구에게 있을까? 우리 공영방송 뿐이다. 그 동안 북측에서 만든 김일성 다큐멘터리는 그를 우상화하는 것 일색이었다. “수령님은 위대한 분이며, 장군님은 수령님과 똑같은 분”이라는 메시지를 천편일률로 반복할 뿐이었다. 김정은이 전면에 나섰으니 “수령님과 장군님과 대장님, 이 세 분은 똑같은 분”이라는 다큐가 곧 제작될 거라고 예상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북측 방송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 이채훈 MBC 〈김혜수의 W〉 PD

김일성에 대한 다큐는 남북 양측의 반발을 살 게 분명하다. 남측 주류는 일부 내용을 문제 삼아 “김일성을 미화했다”고 거세게 항의할 게 예상되며, ‘하느님’이신 ‘수령님’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목도한 북측의 반발 또한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자, 그렇다고 포기할 것인가? 이건 학자들의 논문으로 될 일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PD들 뿐이다. 물론 쉽게 성사될 일은 아니다. 다큐 한번 한다고 남북 양측 사람들의 의식이 확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양측의 시각차는 언젠가 해소돼야 하고, 이를 위한 초석과 나침반이 되어 줄 다큐는 역시 필요하다. 언젠가,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함께 앉아서 이 다큐를 보면서 진지하고 솔직하게 토론할 날이 올지도 모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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