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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태인 경제평론가

도대체 2005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이제 영원히 답을 들을 수 없게 된 질문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해 무더운 날에 대연정을 시도했다가 “안팎에서 타박만 받았고” 이어서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받아 들였으며 급기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추진을 결심했다. 뭔가에 홀린 듯 수렁으로 빠져 들었고 결국 정권과 생명을 잃어버렸다.

역시 3년차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천안함 사건 또한 심상치 않다. PD연합회, 기자협회, 언론노조로 구성된 언론검증위가 지난 12일에 발표한 보고서(“더 이상 ‘버블제트’는 없다”), 그리고 서재정, 이승헌, 양판석 교수 등 해외 학자들의 종합반박문(웹사이트 “천안함의 진실”)은 수렁으로 가는 외길을 훤히 드러냈다. 어쩌면 단순한 사고, 그리고 나사 풀린 군에 대한 사과로 끝났을 일이 ‘국제사기극’으로 확대일로를 걸었다.

북한의 어뢰가 6-9m 수심에서 터져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정부의 주장은 곳곳이 허점 투성이다. 단 한발로 치명적 타격을 입은 배가 해류를 거슬러 북서쪽으로 갈 수 있어야 하고 어뢰 추진체는 30m 이상 밀려났다는데 어뢰의 파편은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선체를 두동강 냈을 버블제트는 배 안의 형광등도 깨지 못했다. 최대 90m까지 치솟아 장관을 연출했을 물기둥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 한겨레 10월13일자 6면.
결정적 증거라는 흡착물은 산소/알루미늄 비율을 볼 때 산화알루미늄이라기보다 수산화 알루미늄에 가깝고 자연 상태보다 훨씬 많이 추출된 황까지 고려하면 바스 알루미나이트로 보아야 하는데 이 두 물질은 폭발이 아니라 상온, 또는 저온에서 서서히 형성되는 물질이다. 스크루의 날개는 관성력 때문이라는 정부 주장과는 반대 방향으로 휘었고 HMX를 주성분으로 하는 폭약은 주로 미국에서 생산된다.

처음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미국이 한국 정부의 손을 들어주자 대통령은 만면에 웃을 띄우며 한미 FTA '조정'을 선언했다. 미국 자동차의 한국 시장 점유율에 연계해서 미국 관세를 낮추고 한국 소비자의 신뢰 회복을 들어 쇠고기의 완전 수입 자유화를 선언할 전망이다. 세계금융위기를 불러 일으킨 미국의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고 아무리 문제가 생겨도 되돌아갈 길마저 끊어버린 한국이야말로 재협상해야 할 것들 투성이지만 정부는 마치 우리가 유리한 협상을 했기에 일어난 일로 치부한다.

이어서 G20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간, 그리고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성실한 중재자”로서 역사적 사명을 자임했다. 그렇다. 더 이상 세계금융위기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금융거래세와 은행세를 부과하여 자본의 이동속도와 몸집, 그리고 모험적 행동을 규제하고 한 나라의 이익에 좌우되지 않는 새로운 국제통화체제를 만들어내야 한다. 요컨대 우리 모두 살아나기 위해서는 금융자본을 제압하지 않으면 안된다.

▲ 정태인 경제평론가
그러나 월스트리트는 이미 미국의 금융개혁법을 종이호랑이로 만들어 건재를 과시했다. 미국이 벌어들이는 이윤의 40%를 오바마 정부가 자청해서 포기할 리 없다. 더욱이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달러가 얻는 막대한 특혜(예컨대 미국은 외환위기를 맞지 않는다)를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은 정치적 사망선고를 자초하는 일이다. 과연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미국을 설득해서, 또는 국제공조로 압박을 가해서 안정적인 국제통화금융체제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을까?

대통령 말씀대로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중요한 역사적 시기에 ‘천안함 사기극’으로 발목까지 잡혔다면 가뜩이나 친미 일변도인 기획재정부나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할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아직도 늦지 않았다. 천안함의 진실을 밝혀 미몽의 수렁부터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역사의 웃음거리로 기록되는 일은 전혀 달가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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