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정보 유출 ‘삼성공화국’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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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훔쳐보기’ MBC만?…“삼성 전횡 용납할 수 없는 지경”

MBC 보도국 내부 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정황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그 대상으로 삼성이 지목되면서 파문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MBC가 뚫렸다=MBC는 지난 7월부터 진행된 특별 감사를 통해 정보 시스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A 차장이 삼성경제연구소 B 팀장에게 MBC 내부 정보를 전달한 정황을 포착했다. A 차장은 MBC 내부 정보를 사내 이메일로 B 팀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제공 대상자로 지목된 B 팀장은 MBC 보도국 기자 출신이다. 1995년부터 MBC 기자로 근무, 2007년 퇴사 후 삼성경제연구소에 입사해 현재 연구조정실에 소속된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삼성그룹 내에서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곳으로, 대내외 정보를 다루는 핵심으로 알려졌다. 즉 B 팀장이 MBC 정보를 빼낸 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취득한 정보가 그룹 내 윗선에 보고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서울 여의도 MBC 방송센터 ⓒMBC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MBC 뉴스 시스템이 ‘뚫렸다’는 것이다. B 팀장은 A 차장으로부터 아이디를 제공 받아 MBC 보도국 뉴스 시스템에 장기간 접속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MBC노조는 1일 성명에서 “외부인이 보도국 뉴스 시스템에 접속해 당일 방송될 뉴스 내용과 편집 순서를 담은 큐시트 등 보도국 내부 정보를 훔쳐 본 정황도 드러났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MBC와 삼성 사이에선 그동안 사전 뉴스 유출 의혹이 심심치 않게 제기돼 왔다.

지난 7월 MBC 〈뉴스데스크〉의 ‘삼성SDS 노조 설립 봉쇄 논란’ 기사가 누락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취재를 맡았던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삼성그룹 홍보 담당 고위간부로부터 여러 차례 전화를 받았는데, 해당 간부가 통화 도중 〈뉴스데스크〉 큐시트까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관련 보도는 당일 〈뉴스데스크〉에서 누락되고 다음날 아침 〈뉴스투데이〉에서 보도됐다.

또 지난해 8월에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과정 불법 판결 보도와 관련해 삼성이 MBC 보도국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제시하는 일도 있었다. MBC노조 보도부문 민주방송실천위원회는 지난해 10월 보고서를 통해 “(뉴스데스크가 방송되는) 9시가 되기도 전에 삼성은 우리 뉴스의 톱기사 내용을 미리 파악해 기사의 수정을 요구하는 일까지 발생했다”며 “사전 뉴스 유출에 대한 조사와 함께 삼성측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 기사 ‘로비’ 사건과도 관련?=일각에선 일련의 사건들이 이번에 드러난 MBC 정보 유출 의혹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실체가 어디까지 드러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정보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들이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내부 감사만으로는 명확히 진상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삼성이 정보 수집과 유통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는지도 확인하기 어렵다. 삼성은 “일부 직원의 개인적인 문제”라며 선을 그은 상태다. MBC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삼성이 조직적으로 정보를 수집한 것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사건인데, 과연 검찰 수사로까지 확대돼 진실의 ‘몸통’이 밝혀지는 것이 가능하겠나”라고 말했다.

MBC 경영진의 태도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MBC측은 “정보 유출 경위 등 정확한 진상 파악 중”이라고 거듭 밝히고 있지만, 삼성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것을 우려해 진상 조사와 문책에 미온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MBC노조는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언론사 내부 정보를 수집해 이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우리 언론의 역사에서 전대미문의 중차대한 사건”이라며 “상대방이 삼성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묻는데 미온적이라면 현 경영진은 사건 은폐라는 또 다른 죄를 저지르는 일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삼성의 자체 진상 조사와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진보신당은 지난 1일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정권의 방송장악에 이어 이제는 재벌까지 언론사를 장악하겠다는 것인지, 정말 개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성토했다. 진보신당은 “이번 MBC 내부정보 훔쳐보기 의혹마저 사실로 드러난다면, 삼성의 전횡은 이제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야 할 것”이라며 “삼성은 이번 의혹에 대해 낱낱이 해명해야 하며 이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에 합당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MBC 한 관계자는 “MBC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들의 정보도 유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이번 사건은 삼성공화국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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