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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밤 10시 30분. 목동 SBS사옥 6층 스튜디오에 반가운 얼굴들이 모였다. 창사 20주년 특집 <그것이 알고 싶다> 녹화를 위해 <그것이…> 간판 MC로 활약했던 문성근, 정진영 씨가 웃는 얼굴로 녹화현장에 나타난 것. 과거 <그것이…> 제작진이었던 박준표 영화감독과 홍순철 교수(한예종),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도 약간 상기된 얼굴로 스튜디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이…>의 ‘열혈 시청자’로 녹화에 참여한 가수 김장훈 씨의 농담으로 출연자들 얼굴에는 웃음기가 돌았다. 문성근 씨는 근황을 묻는 질문에 “시민운동 좀 하고 있다”며 짤막하게 답했고, 정진영 씨는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과 신작 <평양성> 촬영으로 바쁜 일정이라 했다. 김상중 씨와 김소원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녹화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것이 알고 싶다> 초기 제작 팀장이었던 홍순철 교수는 “시청자가 수동적으로 방송을 접하는 대신 시청자와 호흡하는 새로운 방식을 고민한 결과 추리기법을 떠올렸다”며 프로그램의 탄생과정을 설명했다. 추리 흐름 속에 문제를 접근하는 포맷은 시청자들에게 본인이 직접 추리한다는 느낌을 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첫 방송은 화제를 일으키며 재방송되기도 했다. 초대 MC 문성근 씨에 따르면 “방송 초기 시청점유율은 평균 40% 이상”이었다.
90년대 초 연극판에 있던 문성근 씨를 지상파로 섭외한 건 당시 <그것이…> 제작진이었던 송지나 작가의 영향이 컸다. 당시 제작진은 지적이면서 정의로워 보이는 진행자가 필요했는데, 송 작가가 “문성근이 적임자”라 추천 했던 것. 별다른 주저 없이 출연을 마음먹었던 문성근 씨는 “녹화를 위해 대본을 전부 외우고 했었다”며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했다. 초기에는 녹화시간만 10시간이었다고 했다. 방송 당시 열혈 청년이었던 문성근 씨는 “방송하면서 화날 때도 많았다”고 고백했다.
정진영씨는 처음 MC제의를 거절했던 사연을 털어놨다. 그는 “(문성근 선배가) 워낙 잘하셨기 때문에 나는 잘해야 본전이었다”며 거절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결국 그는 MC제의를 수락했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특훈’이었다. 정진영 씨는 당시 여의도 SBS 방송국 근처 호텔에서 며칠간 숙식을 해결하며 지난 방송을 학습하고 발음과 표정을 연습했다.
당시 정진영 씨의 특훈을 담당했던 PD는 최상재 위원장이었다. 최상재 위원장은 “내가 그 때 정진영 씨를 감금시켰다”고 고백해 자리에 있던 모두가 웃기도 했다. 정진영 씨는 “MC가 갖는 반듯한 이미지를 위해 곱슬머리는 늘 펴고 다녀야 했고, 연기 때문에 삭발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가발을 써야 했다”며 그간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92년 ‘이형호 유괴사건’ 당시 조연출이었던 박진표 감독은 그 때의 경험을 토대로 영화 <그놈 목소리>(2007)를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화성 연쇄살인사건’ 편은 <살인의 추억>(2003)의 모티브가 되었고, ‘이태원 살인사건’ 편은 <이태원살인사건>(2009)으로 재현됐다. 이 영화에선 정진영 씨가 사건을 진실을 파헤치는 검사역으로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진표 감독은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항상 소재의 영감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2008년 8‧15 특집 ‘독도’편에 출연했던 김장훈 씨는 “‘그것이 알고싶다’는 정말 즐겨보는 프로다. 한 때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MC를 꿈꾸기도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활발한 사회활동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김장훈 씨는 “이 시스템은 정말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무기력할 때가 있다. 여전히 약자들이 서러움을 받는 세상”이라고 말한 뒤 “이들의 서러움을 풀어주고 대변해주는 모습에 제작진께 너무 감사하다. 박수를 보낸다”며 시청자로서 느낀 고마움을 전했다.
제작진들은 사회적 영향력이 큰 만큼 스트레스도 대단했다. 다들 한 목소리로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게 <그것이 알고 싶다> PD라고 했다. JMS 편(99년) 제작을 맡았던 남상문 PD는 “당시 회사로 협박전화가 하루 6만 건씩 왔다. 집에도 전화가 왔었다”고 털어놨다. 최상재 위원장은 “종교단체의 비리를 취재할 때는 가족을 친적집에 보낼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소송이었다. PD들은 작품 제작 시간을 쪼개 소송준비를 해야했다. 최 위원장은 “이런 어려움을 견뎌내려면 PD들의 체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작진이 준비한 영상에서는 <그것이…> 가 만나왔던 사람들과 사건들이 스쳐지나갔다. 가슴아픈 장면에서는 다들 말이 없었고, 흐뭇한 장면에서는 박수가 이어졌다. 이날 참석자들은 프로그램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문성근 씨는 “프로그램이 연성화 된다는 우려도 있다. 시청률 걱정없이 가끔은 딱딱한 주제라도 과감한 제작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홍순철 교수는 “소재주의로 가는 경향이 있는데 시스템을 문제삼는 구조적 접근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지난 20년간 ‘그것이 알고 싶다’가 해온 역할에 분명 의미가 있지만 우리사회 절대 강자인 정치권력과 대기업은 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현 제작진인 남상문 PD는 “선배님들의 말씀을 잘 새겨 듣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