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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김규형 SBS 교양국 PD

고위층의 자제가 아닌 필부필부의 아들로, 어금니가 성한 대부분의 남성독자 분들은 이런 경험 한 번씩들 있으실 것 같다. 군대 이야기다; ‘포스타(혹은 사령관, 군단장 등)’가 부대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돈다. 데프콘-투 이상의 비상상황. 낮엔 새로 페인트칠을 하고, 야간에는 행동요령에 관한 특별교육이 생긴다. 취사장, 유류고에는 백화점 수준의 디스플레이가 시전되는 마법이 일어나고, 밀린 일기 몰아 쓰듯 몇 주치의 부대일지가 순식간에 탄생한다.

필자의 인상 깊은 경험 하나를 소개한다. 눈이 녹아 질퍽해질 대로 질퍽해진 2월 말의 동계훈련장을 사령관이 방문했을 때였다. ‘사령관님 전투화에 진흙 한 방울 묻히지 말라’는 주임원사의 명을 받들어 사병 셋이 인근 채석장의 자갈을 실어와 훈련장 전체를 메워버렸다. 산이 경치를 막는다하시면 다음날 없어지는 기적이 일어날지니. 농반 진반으로, 군대는 그런 곳이다.

‘20개국 정상들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제일의 강령이었는지, 이 나라는 전 국민이 장군 앞의 사병처럼 행동하길 원했다. G20 얘기다; 이틀뿐이니 그거 협조 못하겠냐만, 모양새는 좀 ‘구렸다’. 다른 나라에서의 회의는 대략 1천억 원 정도의 파급효과가 발생했다는데, 안에서는 그 효과를 20~30조까지 부르짖는다. 한 연구소는 이걸 450조까지 레이스. 우리가 순순히 협조해야 했던 구실은 실은 만들어진 쪽에 가깝다. 이미 블룸버그 통신은 쥐이십을 준비하던 한국을 ‘초등학생과 공무원이 동원되는, 요란 떠는 나라’로 소개했다. 

소지품 검사, 지하철 무정차 통과, 택배금지, ‘승용차 사용을 하지 맙시다, 응?’ 따위의 명령조 선전.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남산의 한 파출소가 컨테이너 형태라 허름하야 국격을 해할 수 있다고 여기셨는지, 판자로 그럴싸한 '경찰서세트'를 만들어내는 능욕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경호를 맡은 경찰소대 안에서 소주병이 나왔다고 누군가가 노발대발 하며 부대 전체를 교체한 일은 ‘야단법석류 최강’이 되었다.
이즈음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트레이닝복 차림을 자제해 주십시오!’라는 정체모를 트윗이 무한 재생산되었다. 경제효과도 알겠고, 중요한 것도 다 알겠는데, ‘적어도 우리 부모님은 손님이 오면 인사를 시켰지 어디 숨어있으라고 하진 않으셨다’는 냉소에 사람들이 ‘좋아요’를 날렸다.

2006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선 경비인력으로만 1만 명이 배치되었던 것을 두고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는 싱가포르가 평판에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올림픽 한다고 산에 녹색 칠한 중국에, 그때 욕한 걸 사과하고 싶을 정도로 ‘허세’에 ‘쩔어’있는 다이내믹한 나라. 더 부끄러운 건 쥐이십을 자축하는 기사들마다 달려있는 ‘화끈한 여자는 널렸고 밤은 길잖아, 빨리 연락줘’라는 간절한 도배댓글. 관리자는 뭐하나,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데.

▲ 김규형 SBS 교양국 PD

여하튼 대부분 사병생활도 안 해본 높으신 분들께서 ‘시전’과 ‘의전’에 관한 스킬은 어찌 그리 잘 이해하고 계신지, 또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도 구분 못한 채 떨어지는 감[枾]을 철사로 묶을 만큼의 감(感)밖에 없으신 분들이 몇 백조짜리 회의는 어찌 진두지휘하시는 건지. 많은 궁금증을 가진 채 분위기 그럴싸한 짝퉁 돌담길을 걸으며 속삭인다. ‘이럴 거면 하지 마, XX, 하지 마, 성질이 뻗쳐서 진짜...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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