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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미국’을 느끼게 하는 영화

|contsmark0|미국의 5월 30일은 메모리얼 데이로 우리의 현충일에 해당한다. 헐리우드 메이저 배급사들은 이 날을 끼고 대개는 성조기 펄럭이는 스펙터클한 영화를 개봉함으로써 본격적인 여름 장사에 들어간다.
|contsmark1|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이미지로 완벽하게 복원해내는 초절 기교의 촬영술로 전쟁 시뮬라크르의 정점을 보여준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생각하면 된다.
|contsmark2|문제는 이런 미국제 현충일 영화들이 전몰장병을 ‘기억’하는데 봉사하기 보다는 전쟁을 ‘추억’하게 한다는데 있다. 어쨌든.
|contsmark3|헐리우드 메이저 중 디즈니는 보수적 회사 경영과 20/20 전략이라는 짠돌이 투자방법으로 악명이 높다. 어떤 영화든 순이익이 투자액을 건지고 최소 20%는 확보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야 돈을 대주고 거둬들인 수익금에서 20%의 한도 내에서만 재투자를 한다는 원칙이 그것이다.
|contsmark4|‘진주만’은 이런 디즈니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단일 제작비로는 역대 최고액 이라는 1억4천5백만 달러(우리 돈으로 얼마인지는 내가 제작비 청구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계산기로는 숫자 표기 조차 불가능하다)를 쏟아 부어 만든 여러모로 기념이 될 만한 허접스런 전쟁 영화다.
|contsmark5|1941년 12월7일, 하와이 진주만 상공에 일본의 제로센 비행기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지상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해댄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2000여명의 미군이 그 자리에서 전사했고 1000여명이 부상을 당한 반면, 일본군은 29대의 비행기를 잃었고 100여명 미만의 전사자만을 냈다.
|contsmark6|다음날 루즈벨트 대통령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이것이 진주만 공습의 실제 역사이고 이 모든 일에 걸린 시간은 불과 90여분 남짓이었다.
|contsmark7|영화 ‘진주만’은 이 역사적 시간 90분 위에 액션과 로맨스를 심심하게 버무린 90여분을 덧붙여 대하 전쟁드라마에 도전한다. ‘쉬리’에 원초적 영감을 제공한 ‘더록’과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오형제를 그린 ‘아마겟돈’을 연이어 성공시킨 프로듀서 제리 브룩하이머와 마이클 베이 감독은 흥행 영화에 관한 한 분명 드림팀이다.
|contsmark8|대강 이런 류의 드림팀이 만드는 영화는 동어반복과 혼성모방이 창작으로 가능하다. ‘탑건’의 전투기를 자동차로 바꿔 ‘폭풍의 질주’를 만들고, 반란군에 점령당한 폐감옥을 죄수가 탈취한 비행기로 바꾸면 ‘더록’에서 ‘콘에어’가 되는 식이다.
|contsmark9|‘진주만’이 실재했던 역사가 아니고 역사적 가정에서 출발한 가공의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영화였다면, 아마 우리는 그 기발한 상상력과 장쾌한 폭발음에 갈채를 보내며 ‘오만한 미국’을 용서했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contsmark10|영화는 견딜 수 없이 풍요로운 미국의 코닥크롬 빛 풍광으로 시작한다. 조종사를 꿈꾸는 톰 소여와 헉클베리 핀이 목조 비행기에 올라타고 재잘거린다. 비행기가 화면 가득 낮게 지나간다. 두 소년 레이프(벤 어플렉)와 대니(조쉬 하트넷)는 미 육군 항공대의 파일럿트가 되어있다. 사이에 간호장교인 이블린(캐이트 베킨세일)이 등장하여 곰팡내나는 망부가 얘기로 끌고 간다.
|contsmark11|그리고 세 사람은 곧 실리적인 미국인답게 빗나간 짝짓기가 할퀸 상처를 이음새 없이 봉합한다. 바로 그때 하늘에선 포탄이 쏟아지고 바다에선 어뢰가 작렬한다.
|contsmark12|‘진주만’은 과잉의 영화이다. 한가지 재주밖에 없는 차력사 마이클 베이가 사람잡을 흥행사 브룩하이머가 깔아놓은 깨진 유리 조각위에 맨 살 비벼대며 제 힘 자랑하는 미련한 영화다.
|contsmark13|보도 자료의 사진을 보니 모자를 눌러쓴 제리 브룩하이머의 얼굴은 해묵은 nmd계획을 국방 정책을 들고 나와 전 지구적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는 부시대통령과 묘하게 닮아있다. 부시가 대책없이 ‘우향우’를 외치니 ‘진주만’을 두고 치고 받았던 일본의 고이즈미가 덩달아 오른쪽으로 따라 돈다. 이런 의미에서 ‘진주만’은 패권주의를 교사하고 있다는 협의가 짙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contsmark14|‘진주만’공습 다음날인, 1941년 12월 8일자 뉴욕 타임즈를 찾아보았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대일 선전포고 동의안’이 미의회를 통과했다는 기사가 헤드라인인데 놀랍게 ‘반대’가 한표 있었다. 미스 랜킨스라는 이름을 보아선 여자같은데 그녀는 도대체 무슨 마음을 먹고 ‘기권’도 아닌 ‘반대’표를 던졌을까? 영화 ‘진주만’이 내게 준 유일한 지적호기심이다.
|contsmark15|배숙현 sbs 영화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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