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KBS 저널리즘에 활력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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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추적60분’ 천안함편 강윤기 KBS PD

▲ 강윤기 KBS <추적 60분> PD ⓒPD저널
우여곡절 끝에 방송된 <추적60분> ‘천안함편’을 제작한 강윤기 PD는 “이번 방송이 침체된 KBS 저널리즘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고 자평했다.

정권에 민감한 주제는 침묵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KBS가 민·군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최종보고서’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자체가 방송 전부터 화제였다.

방송 직전까지 데스크가 일부 내용을 문제 삼아 한 때 ‘불방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지난 17일 방송된 <추적60분>은 △천안함 흡착물질이 폭발과 무관할 수 있고 △합조단도 이러한 가능성을 알면서도 파장을 우려해 폭발재로 결론내린 점 등을 밝혀냈다.

22일 여의도 KBS에서 만난 강윤기 PD는 “그동안 내부에서 패배주의나 자기검열이 많았는데 (이번 방송이) 이런 분위기를 어느 정도 깨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추적60분> 자체도 최근 이렇게 주목받고 회자된 적이 없다. KBS가 아직 살아있고, 날카로운 시선이 있다는 걸 조금 보여준 것 같아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강윤기 PD와의 일문일답이다.

- 방송 직전까지 부담이 컸을 것 같다.
“(흡착물질에 대한) 실험이 잘못되면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망신을 당할 수 있기 정말 부담이 많이 됐다. 방송 직후까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입술이 부르텄다. 방송이 나가면 실험의 적절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줄 알았는데, 취재과정에서 국방부가 이를 인정하면서 오히려 (논란이) 끝났다.”

- 합조단 최종보고서까지 나온 상황에서 실험 의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선뜻 나서는 과학자가 없었다. 국내 웬만한 대학의 물리학·화학·지질학과 교수 400여명에게 도움 달라고 이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답변을 준 경우도 많지 않았고, 대부분 언론3단체 검증위 조사결과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거나, 오류가 많지만 본인은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전문가들이 토의를 거쳐 추천한 정기영 안동대 교수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 과학자들이 쉽게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천안함 흡착물질 분석을 위해 국내 유명한 관계기관에 공문을 보내거나 전화통화를 했지만 다 거절당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바쁘다는 것이었지만, (논란에) 끼기 싫다는 거였다. 미국·일본 학자까지 접촉했다. 흡착물질 샘플을 보내기 직전까지 갔는데, 그쪽에서도 실험은 하겠지만 (화면) 모자이크 처리와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것을 요구해 당황스러웠다.”

- 국방부는 취재협조에 적극적으로 응했나.
“인터뷰 요청에 바로 수락했다. 2~3명 정도 나올 줄 알았는데, 합조단이 대부분 다 나왔다. 국방부가 준비를 많이 했다. 덕분에 새로운 증언이 많이 나왔다. 특정 부분을 (방송에서) 빼달라는 요구 등은 없었다. 하지만 예정에 없던 질문을 하면 난감해하는 경우는 있었다. 내부조사의 부실한 부분을 인정하거나, 최소한 보고서대로 시청자들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은 아쉬웠다.”


- 이번 방송의 성과를 꼽는다면.
“결론적으로 국방부와 완전 다르게 (흡착물질이 폭발과 무관할 수 있다는) 실험결과가 나왔는데, 국방부가 (내부에서 이미 제기되 문제라며) 이를 인정했다. 중요한 건 합조단이 알고 있으면서도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숨겨왔던 것이다. 의사결정구조의 심각성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또 새로운 팩트(사실)을 확인한 것도 성과다. 사고현장이 보이는 또 다른 초소가 있고, 여기서도 물기둥을 보지 못했다는 것과 천안함에서 회수된 무기들을 폐기한 것 등은 취재를 통해 새롭게 드러난 사실이다.”

- 특히 합조단 내부조사의 은폐 또는 왜곡의혹이 드러났다.
“과학적 검증 결과들을 자유롭게 논증하면서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안 된 것 같다. 합조단에 참여한 관계자들도 괜히 얘기했다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실제로 언론보도와 관련해 조사받은 사례도 있다고 했다. 과학자들과 합조단측이 공정한 의사소통을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국내과학자들이 못나서는 것도 뭔지 모를 스트레스와 압력 때문이 아닐까. 천안함 사건에 대해 실험을 한 서울 모 대학 자연과학동아리가 있어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결국 학생들이 펑크를 냈는데, 그 이유가 취업할 때 피해를 볼까 두렵다는 것이었다. 일반인들마저 피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는데 충격을 받았다.”

- 방송사 가운데 처음으로 합조단 최종보고서에 문제를 제기해 방송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주류 언론이 관심 갖지 않은 상태에서 최소한 보고서 문제에 대해 용기 있게 다뤘다. 방송 이후 국방부가 보도자료를 냈다. 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논리적 반박은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던 국방부가 본인들의 오류에 대해 지엽적이라고 하는 건 말이 맞지 않다. 이번 방송이 궁금증을 푸는 단초를 제공했지만, 아직 멀었다고 본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혹이 여전한 것은 언론의 탓이 크다. KBS를 포함해 주류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해 오해가 커졌다. (합리적 의문에 대한) 생산적인 장이 없었다. 언론은 정부발표를 그대로 쓰거나 반대 의견을 매도하기만 적극적인 해결 의도가 없었다.”

- KBS 시사프로그램이 정권에 민감한 주제를 다룬 것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내부적으로는 이번 ‘천안함 편’이 침체된 KBS 저널리즘에 활력을 불어넣은 계기가 됐다. 패배주의나 자기검열이 많았는데, 이런 분위기를 어느 정도 깨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추적60분> 자체도 최근 이렇게 주목받고 회자된 적이 없다. KBS가 아직 살아있고, 날카로운 시선이 있다는 걸 조금 보여준 것 같아 뿌듯하다.”

- 방송 직전까지 데스크와 갈등을 겪었는데.
“천안함을 다룬다고 했을 때부터 내부에서 ‘결론난 걸 왜 다시하려고 하냐’는 식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정치적 접근이 아닌 과학적 검증이라는 전제로 팀원들의 동의를 얻어 어렵게 추진했다. 방송 내용은 (시사제작국장 지시로) 조정된 부분이 있지만, 골격은 흔들리지 않았다. 준비한 팩트는 다 나갔다. 방송이 됐기 때문에 삭제 등의 표현을 하는 건 적절치 않지만, 갈등이 꽤 있었고 평소와 다르게 (데스크)의 의견개진이나 절차가 셌던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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