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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LA= 이국배 통신원

이번 추수감사절을 맞아 연평도 포격 속보와 함께 미 전국을 흔드는 또 하나의 큰 뉴스가 있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흔히 우리의 추석 명절에 비유되곤 하는데, 그런 면에서 연중 가장 많은 여행객이 이동한다는 날이다. 그런데 이같은 민족 대이동의 날을 맞아 최근 미국내 공항에 설치된 전신 스캐너와 공항에서의 몸수색에 대한 전국적 차원의 대규모 검색 거부운동이 펼쳐질 것이라는 소식이 떴다.

당연히 연방항공청뿐만 아니라 정부차원의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언론들도 온통 관련 소식에 집중, 관계자 인터뷰뿐 아니라 토론 프로그램에서까지 찬반 토론이 이어지면서, 이 전신 스캐너 문제는 명실공히 이번 추수감사절 최대의 사건이 될 것 같은 조짐이었다.

▲ 유튜브(YouTube)에서 논란이 된 3살 아이가 공항에서 몸 수색을 받는 동영상

미국 언론들의 이 같은 긴장감은 시간이 지나서야 그렇게 보이는 것이겠지만 거의 호들갑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같은 호들갑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이 최근 들어 유튜브에 3살짜리 꼬마가 몸수색을 당하는 장면이 뜨고, 유방암 수술로 인해 가슴 보형물을 했던 한 중년 여성이 몸수색 과정에서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는 발언이 한 방송 매체와의 인터뷰에 공개되면서, 미국인들의 트위터에는 시간당 4000여개의 포스팅이 기록되고, 구글에는 약 2000만개의 관련 검색과 댓글이 달렸다.(<뉴욕타임즈> 11월 28일자)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추수감사절 전날을 ‘전신 스캐너 전국적 거부 운동의 날’ 로 정하고 이에 대한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이자는 제안은 미국 정부와 언론에게 거의 대포격에 버금가는 대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른바 D-데이인 추수감사절 전날, 미국 공항들에서는 믿기 힘들었지만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상 사태를 대비해 당국이 검색요원을 2배로 충원하고, 항공 지연을 우려한 여행객들이 평소보다 공항에 일찍 도착하는 일이 벌어져, 오히려 예년보다도 빠르면서도 질서 정연한 탑승 수속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미국 언론들의 전언이다. 공항 주변에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 황당해진 표정의 기자들만이 가득했다는 후문이다.

이제는 이같은 현상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가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우선 미국인들의 전신 스캐너에 대한 거부감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적고, 테러에 대한 두려움이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상당히 크다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 들어와 본토에서의 전쟁 경험이 전혀 없는 미국인들이 9·11테러를 직접 목격했고,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도 항공 테러 기도가 있었다는 보도를 접했으며, 공항에서의 대규모 검문 검색이 9·11 테러 이후 거의 10년 가까이가 되다보니 국민 정서상 검문 검색이 아예 생활화가 된 특수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워싱턴 포스트>와 ABC 방송이 최근 여론 조사를 해서 CNN 방송이 보도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4%가 스캐너 사용에 동의한다고 답한 반면에, 32%만이 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지금 미국내에서는 여행객이 스캐너 사용이 싫다고 하면 몸수색을 선택 사항으로 택할 수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만 좀 문제가 있다는 반응이다. 응답자의 48%가 몸수색에 찬성한다고 답한 반면에 50%는 이는 당국이 좀 지나치다고 응답했다. 따라서 현재 미국에서의 보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전신 스캐너 보다는 이를 거부할 경우, 몸수색을 선택해야 한다는 부분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 미 전국적으로는 450개의 공항이 있고, 이중 70개 공항에 약 400대의 전신 스캐너가 가동중인데, 미 항공안전청은 2011년까지 600개의 스캐너를 추가 설치해 약 1000여대 수준으로 이를 확대 가동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에서의 조사결과와 현재 분위기만을 보자면, 몸수색은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지만 전신 스캐너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이 추가 설치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 LA통신원= 이국배 KBS America 편성제작팀장
당분간은 미국에서 또 다른 차원의 강력한 안전 이데올로기가 등장하지 않는 한, 기존의 “안전 이데올로기”를 꺽을 이데올로기는 존재하지 않을 듯 싶다. 예를 들면 전신 스캐너를 통한 방사선 노출이 인체에 치명적인 해악이 된다는 꺽을 수 없는 과학적 논증이 제기되지 않는 한, 단순히 인권을 기초로 한 가치관적 논리는 미국인들의 정서상 힘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뉴욕타임즈>는 이번 사건에서 소셜 네트워크와 기존 미디어들과의 충돌 및 연계를 보았다고 지적했다.소셜 미디어를 통한 여론의 확산과 전파의 힘에 대해 이른바 “주류 언론이 얼마나 긴장하고, 주목하며, 한편으로는 과장되게 반응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해프닝이었다는 평가다. 또 사회적 여론이 충돌하고 이합 집산하는 사안과 관련해서 이와 유사한 현상들의 출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즈>는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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