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작기] 이경용 MBC 시추에이션 휴먼다큐〈그날〉PD

연평도 피격 소식에 아이템 회의를 중단하고 곧바로 인천으로 향했다. 인천 연안부두는 이미 섬을 떠난 가족들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난달 23일 자정이 넘도록 연평도에서 출발한 어선들이 쉴 새 없이 연안부두로 들어왔다.

예순이 넘은 아버지, 어머니가 포격을 피해 어선을 탔다고 전화를 받은 아들과 딸은 다행이라며 웃었지만, 배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안심하지 못했다. 배가 안전하게 도착하고, 생사여부를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섬을 빠져나와 손자와 이마를 맞대고 안도의 한숨을 쉬던 할머니, 아들보다 먼저 뭍에 도착하고 나서 괜히 빠져나왔다고 눈물을 글썽이던 어머니,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카메라를 향해 소리치던 주민들의 분노. 모두가 그날, 그 곳에 얽힌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날, 연평도 주민들은 깜깜한 밤바다를 6시간 넘게 건너왔다.

2010년 11월 23일은 그 자체가 ‘그날’이었다. 지난 11월부터 시작한 <시추에이션 휴먼다큐-그날>이 23일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집단이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여러 사람들이 얽혀 충돌하고 균열이 일어나는 상황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의 단면을 기록하자는 것이 초기 문제의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급뉴스로 타전되는 속보는 영화보다 비현실적이었고, 그래서 인천에서 본 21세기 대한민국의 피난민들 앞에서 나는 〈그날〉이 아니라 이제는 없어진 〈W〉를 제작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외국에 와 있는 것처럼.

그날 구호 물자를 실은 배에 올랐던 기자단은 군의 통제로 섬에 들어가지 못했고, 다음 날 새벽 다시 입도를 시도한 기자들은 바다 한 가운데서 해경정으로 쫓겨나 되돌아왔다. 그 순간 연평도 주민 수백 명이 방공호에서 전쟁의 공포를 마주하고 밤을 지내고 있었다. 군의 통제는 엄격했고, 우리는 섬에 닿을 방법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그 사이 정치인들은 섬에 들어가지 못한 취재진을 대신해 섬을 누비며 피해상황을 전달했다. 그날의 중심인 연평도에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절망했고, 섬에서는 주민들이 계속 빠져나오고 있었다.

누가 얼마나 섬을 빠져나왔는지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다. 국내 취재진뿐만 아니라 외신 기자들까지 뒤엉켜 버린 인천 부두. 섬을 빠져나온 주민들은 쏟아지는 질문과 쉴 새 없이 터지는 셔터 불빛 속에서 어지러워했고, 기다리던 가족들과 함께 부두를 떠났다. 연고가 없는 주민들은 군청에서 마련한 임시 숙소인 찜질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들의 운명과 미래를 위로하는 사람들은 찾기 힘들었다.

이틀 후 연평도를 오가는 민간 여객선에 출항 허가가 났다. 주민들은 뱃삯을 내야만 섬에 들어가 짐을 챙겨 나올 수 있었다. 주민들 대부분은 이주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 말을 책임 있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다만, 주민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더 큰 보복이나 복수가 필요하다는 주장만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 이경용 MBC 시추에이션 휴먼다큐〈그날〉PD

3박4일, 짧은 취재기간 동안 수많은 증언들과 수많은 분노, 수많은 절망 앞에서 카메라에 무엇이 담겨야 하는지 내내 고민스러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민들의 진심이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었고, 중요한 것은 그 진심이 몇 배의 보복도, 응전도, 전쟁에 대한 의지도 아니라, 미래를 계획하고 현실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가 평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당연한 소망이라는 점이었다. 이 세상에는 좋은 전쟁이 불가능한 것처럼 나쁜 평화도 없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이번 방송은 무사히 끝났지만, 역대 최대 규모의 한-미 연합훈련은 예정대로 진행됐고, 연평도 주민들은 아직도 찜질방에서 미래를 두려워하며 삶에 절망하고 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