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PD수첩’을 법정에 세웠나
상태바
누가 ‘PD수첩’을 법정에 세웠나
PD연합회·언론정보학회 등 토론회…“조중동 의제 왜곡과 MB정부의 합작”
  • 김고은 기자
  • 승인 2010.12.06 13: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언론정보학회, 민주언론시민연합, 한국PD연합회가 지난 3일 서강대학교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언론 보도와 PD수첩 재판,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에 관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PD저널
조능희 전 'PD수첩' 책임PD(왼쪽)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PD저널

“청와대 ‘대포폰’ 사건을 들었을 때 백번 이해가 됐다. 지난 32개월간 내 휴대폰으로 중요한 얘기를 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지금부터 중요한 건 쓰지 않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다. 그렇다고 언론이 대포폰을 쓸 수는 없지 않나. 이것이 대한민국 언론 자유의 현실이다.”
-조능희 전 〈PD수첩〉 책임PD

“지금 웃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검찰일 것이다. 검찰에게 유무죄는 중요하지 않다. 검찰이 신경 쓰는 것은 재판 그 자체다. 재판을 통해 한국 사회를 잠재우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들은 법률가가 아닌 정치가이다.”
-박건식 MBC 〈PD수첩〉 PD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MBC 〈PD수첩〉 제작진이 1심에 이어 지난 2일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공직자의 공적 업무에 대한 언론의 비판·감시 기능과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한 판결이었다.

2008년 4월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이 방송된 지 32개월이 지났다. 비록 항소심까지 무죄 판결이 났지만, 촛불정국부터 조·중·동의 파상공세, 정부여당과 검찰 등의 전방위적 압박 등 〈PD수첩〉이 겪어야 했던 지난 32개월의 시간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과제들을 남겼다.

이에 한국PD연합회, 한국언론정보학회, 민주언론시민연합는 지난 3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언론 보도와 PD수첩 재판,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에 관한 긴급 토론회를 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보도를 둘러싼 우리 사회 담론과 미디어 프레임을 짚었다.

조·중·동은 어떻게 ‘PD수첩’을 법정에 세웠나

〈PD수첩〉 제작진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인공은 보수 언론으로 대표되는 조·중·동이었다. 김유진 민언련 사무처장은 “조·중·동은 이명박 정부 이상으로 〈PD수첩〉 죽이기의 핵심 역할을 했다”면서 “조·중·동의 대응은 정부보다 발 빨랐고, 〈PD수첩〉을 어떻게 잡을 것인 지에 대한 기본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꼬집었다.

▲ 한국언론정보학회, 민주언론시민연합, 한국PD연합회가 지난 3일 서강대학교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언론 보도와 PD수첩 재판,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에 관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PD저널
김유진 사무처장은 “조중동은 〈PD수첩〉 보도 직후부터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전제를 깔고 〈PD수첩〉의 문제 제기를 ‘부풀리기’, ‘괴담’으로 몰았으며 인터넷에 떠도는 근거 없는 주장들과 싸잡아 비난했다. 이후에도 조중동은 정부의 〈PD수첩〉 고소와 검찰의 수사 및 기소, 1심 판결까지 끊임없이 왜곡된 의제를 만들거나 확산시키면서 〈PD수첩〉을 ‘거짓말 방송’으로, 촛불 집회를 ‘거짓말 방송에 휘둘린 혼란’으로 몰았다”고 지적했다.

조중동의 의제 왜곡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거짓말 방송이 촛불을 선동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왜곡방송은 처벌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PD수첩〉의 ‘의도적 왜곡 방송’을 증명하기 위해 조중동은 번역·감수자 정지민 씨의 주장을 대서특필했고, 이를 전후로 때맞춰 농림수산식품부의 〈PD수첩〉 제작진 고발과 촛불집회 폭력진압 등 이명박 정부의 ‘대공세’가 이뤄졌다.

조중동은 특히 검찰이 언론보도의 진위를 가리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고민도 전혀 없이 검찰의 ‘흘리기’를 ‘받아쓰기’ 해 가며 처벌을 촉구했다. 김유진 처장은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를 놓고 이것으로 ‘광우병 부풀리기’가 확인됐다고 단정하는 등 언론인 체포와 공영방송 압수수색을 정당화하며 ‘너희는 언론 자유를 주장할 권리가 없다’고 몰아붙였다”면서 “언론사의 간판을 달고 검찰 수사를 정당화 하는, 이해되지 않는 양태였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윤태진 연세대 교수는 “조중동이 언론 자유와 공적 감시의 필요성에 대해 일관되게 부인하는 것은 언론인으로서의 사명 의식이 아니라 정치적 성향, 또는 PD저널리즘에 대한 반감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결과”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그러면서 조중동이 정작 자사 이익과 관련해선 가장 강력한 무기로 활용하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 자유”라며 “이처럼 모순되고 일관성 없는 주장은 저널리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PD수첩’이 당하는 동안 KBS와 SBS는 뭐했나”

조선일보는 〈PD수첩〉 방송의 고의성이 없다는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서도 논란이 된 김은희 작가의 이메일을 문제 삼아 비판했다. 조선은 ‘이명박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른다’는 김 작가의 이메일 내용을 근거로 “이것 이상으로 PD수첩 제작진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사실을 허위·왜곡·과장하려고 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태진 교수는 “국문법상 논리도 맞지 않을뿐더러, 개인 이메일을 수사 자료로 활용했다는 자체에 분개해야 할 판에 오히려 이를 부추기는 꼴이 한심하다”고 비판했다.

〈PD수첩〉에 대한 조중동의 파상 공세는 일사불란했던 반면, 이에 대응하는 세력과 사회적 담론은 부족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유진 처장은 “〈PD수첩〉이 공격 받고 당할 때 누가 함께 싸웠던가. 〈PD수첩〉 스스로 가장 열심히 싸운 것 같다”며 “계속 되는 후속 보도를 통해 문제를 지적하고 조중동의 왜곡 행태를 비판하는 등 본인이 본인을 방어하는 식으로 가다보니 또 다른 공격의 빌미가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김 처장은 “그런 점에서 KBS와 SBS에 유감스럽다”며 “방송사의 경쟁 체제에서 MBC가 당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 했나”라고 일갈했다.

‘토론하자’던 노무현 정부, ‘소송 걸라’는 이명박 정부

조능희 전 〈PD수첩〉 책임PD는 이날 토론자로 참석해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지난 32개월간 “외로운 싸움”을 벌인 심정을 털어놨다. 그는 ‘침묵하는 다수’였던 언론학자들에 대한 섭섭함과 함께 조중동과 〈PD수첩〉의 악연, 촛불 정국 이후 조중동 내부 건전한 비판 세력마저 사라진 현실 등에 대해 소회를 밝혔다.

▲ 조능희 전 'PD수첩' 책임PD(왼쪽)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PD저널
그는 언론에 대한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대응의 결정적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PD수첩〉을 5~6년 했는데, 노무현 정권 시절에 FTA 갖고 보도를 많이 했다. 주로 절차상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FTA 비판 프로그램이 몇 번 나가고 나서 여론이 바뀌는 경향이 보이자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어떻게 했냐. PD와 토론하자고 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쟤들 (소송) 걸어라’다. 바로 이런 게 차이다.”

“언론이 사법부에 판단을 구해야 하는 현실, 안타깝다”

항소심 재판부의 무죄 판결로 〈PD수첩〉의 형사적 책임을 둘러싼 법정 공방은 일단락된 분위기지만, 언론 활동이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회의적 고민은 남았다.

송일준 PD는 “〈PD수첩〉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 전반적인 저널리즘에 대한 인식의 천박함을 느꼈다”며 “저널리즘 행위가 사법부에 의해 규정당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서글프다”고 말했다.

윤태진 교수도 “법원 판결에 의존해서만 이것이 사실이다, 아니다,라고 결정해야 할 정도로 우리 언론이 취약한가”라며 “판결 자체가 일관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보도의 사실성 여부를 법원만 바라보며 결정해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언론 자유의 문제나 보도의 사실성 문제를 법원이 판결하도록 맡기고 법원 눈치를 봐야 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며 “언론계 내부와 더불어 시민사회, 학자 등 많은 주체들이 힘을 합쳐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 가장 건강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