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모는 건설업자의 자존심이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유인식 SBS ‘자이언트’ PD

▲ <자이언트>의 이강모(이범수 분). ⓒSBS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개발의 땅 강남에서 굵직한 현대사를 돌파해 온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자이언트>(연출 유인식, 극본 장영철)가 7일 60부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자이언트>는 방송 초반 정치적 의도로 만들어졌다는 ‘루머’와 월드컵으로 인한 결방으로 어려움을 겪고 <동이>와의 시청률 경쟁으로 위태로운 때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시청률 30%를 넘기며 월화드라마의 ‘자이언트’가 됐다.

연출을 맡았던 유인식 PD는 <인간시장>, <대조영>으로 유명한 장영철 작가와 헌신적인 스태프들과 함께한 1년간의 작업에 흡족한 모습이었다. 유 PD는 <자이언트>를 “용광로처럼 질주하는 드라마였다”고 정의한 뒤 “강모에게 건설업자로서 프로페셔널한 자존심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대극으로서의 리얼리티를 놓친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 시작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관제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일련의 분위기 때문에 혐의가 씌워져서 초반 20부까지 많이 답답했다. 모종의 압력으로 급수정 됐다는 루머도 있었다. <동이>로 인해 시청률도 답보 상태였다. 월드컵으로 결방도 있었다. 창사 20주년 기념 타이틀을 걸고 나왔던 드라마였다. 20%는 나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그래도 콘텐츠 자체에 자신감이 있어서 힘 낼 수 있었다.”

- 강남 개발을 둘러싼 한 인물의 성공 스토리를 그렸다. 굳이 강남을 택한 이유가 있나.

“어린 시절을 강남에서 보냈다. 70~80년대 강남 개발사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잘 보여준다. 강남은 서로가 서로의 욕망을 부추기며 만들어진 곳이다. 강남이란 땅 자체가 엄청난 신분 상승을 했다. 이런 강남을 보여주려면 강모(이범수 분)의 직업은 꼭 집 짓는 사람이어야 했다. <자이언트>는 70년부터 95년 사이를 다뤘는데 70년에는 와우아파트가 무너졌고 95년에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이 같은 개발의 단면을 강모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 유인식 SBS 〈자이언트〉 PD
- 이강모 캐릭터를 위해 현실에서 벤치마킹한 인물이 있나. 

“없다. 강모는 힘들었던 시대를 ‘독고다이’로 돌파하면서 비겁해지지 않는 캐릭터로, 상상 끝에 나온 인물이다. 현실에서 그런 인물은 찾기 어려웠다.(웃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당시 부랴부랴 건물 안전진단을 했다. 그 때 기준에 적합하게 지어진 건물은 조사대상의 2%였다. 뒤집어 얘기하면 2%는 제대로 지었다는 얘기다. 나는 이강모가 그 2%의 인물이었으면 했다. 부정부패와 뇌물이 횡행하던 시기에 로비자금에 들어갈 돈으로 집을 짓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성공하는 기업가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를 ‘자이언트’라 부르고 싶었다.”

- 삼청교육대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강모를 삼청교육대에 보낸 이유가 있나.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다루는데 있어서 삼청교육대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강모는 삼청교육대를 들어갈 당시 독기와 한으로만 뭉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박노식을 만나며 삶이 바뀐다. 강모는 자신이 외면했던 훈련병 534번(박노식 분)으로 인해 살아남았고, 그곳에서 ‘사노라면’을 합창하며 ‘연대’를 배웠다. 여기가 강모의 터닝포인트다. 강모는 이곳에서 일종의 빚을 얻고 나왔다. 사회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

- 조필연에 대한 시청자들의 애정도 높은 것 같다. 조필연이란 캐릭터에 대해 평가한다면.

“조필연(정보석 분)에게 인간적인 구석을 주지 않았다. 다만 워낙 정보석 씨가 형상화를 잘 해주셨다. 악당이 강하고 매력적일수록 선한 주인공도 산다. 시놉시스 단계부터 가장 중요한 인물이 조필연이었다. 대놓고 악인이 아니라 계란껍질처럼 매끈한 인물이면서 항상 상대의 약한 포인트를 공격하는 치밀함과 동시에 광기 있는 악인의 모습이 필요했다. 조필연은 나이를 먹어가며 악역의 역사를 만들었다. 오래 보니까 정을 느끼는 시청자도 있는 것 같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

“개포동 벌판에서 삼남매가 좋아하는 장면이다. 삼남매가 활짝 웃는 모습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 <자이언트>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다면.

“제임스 딘이 나왔던 영화 ‘자이언트’에 나오는 거인은 결국 자기 덩치를 주체하지 못하고 몰락한다. 지금의 강남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땅이 됐다. 서로가 서로를 구별 짓고 있다. 외국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우리가 점점 몰락하는 ‘자이언트’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열정적으로 인생을 바쳐 부를 이룬 사람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것이 주어진 욕망에 의해 떠밀려 가는 것이라면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필요할 것 같다. 한국은 이미 ‘거인’이라 부를만한 국가가 됐다. 우리에겐 거인이 된 이후에 어떻게 다 함께 살아갈지가 중요하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